한국의 게임산업이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에 국내시장을 잠식당하는 것 말고도 우수한 인재나 유수의 게임업체들이 통째로 중국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게임업계의 절규다. 업계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3일 국가미래연구원은 ‘게임산업 경쟁력분석과 제고 방안’을 주제로 산업경쟁력 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권택민 가천대 게임대학원 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강신철 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장, 권강현 서강대학교 지식융합학부 교수, 윤준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 최보근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관 등 전문가와 정책당국자가 토론을 벌였다. 다음은 권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주]
미국 하버드대 크리스텐센 교수는 “주도적 기업들의 몰락은 경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고객들과 시장을 통해 커지는 가장 파괴적인 혁신을 외면했던 것이 패착으로 작용한 것이다”고 했다.
한국의 게임산업은 과연 위기인가? 1950년대부터 시작된 글로벌 시장 게임산업에서 그간 한국은 일본 소니나 닌텐도 등의 변방회사로 참여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산업적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1990년대 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과 더불어 개인용 컴퓨터(PC)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세계 최초의 게임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게임강국으로 면모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 온라인 게임 종주국이라는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오히려 중국의 거대 자본에 의한 국내 기업이나 게임 컨텐츠들에 대한 인수, 투자, 자회사 설립 등이 활발히 진행돼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중국 자본 의존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위 잘나가는 게임사들 대다수가 중국 대형자본의 투자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국내 게임시장마저 급속한 성장세 하락과 외산 게임의 한국 시장 점령이라는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탄생된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성숙기에 진입하고 있는데, 스마트 기기 보급률이 정점에 올라 확산이 지체되고 있으며 마케팅 비용은 증가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국내 모바일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11.6%에 달하나, 향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측면에서 국내 게임시장의 망 외부성(네트워크 외부성) 현상도 극명하다. 기존 대기업의 영향력은 강해진 반면 중견기업은 고사 위기에 놓여 있다. 2012년 47개 게임기업의 매출 총합은 전년 대비 10.58% 증가했지만, 그 중 27개사는 오히려 매출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000억원 이상 매출기업은 9개 사에서 13개 사로 증가했고, 매출 측면에서도 이들 기업의 매출 총합은 5조5803억원으로 전년대비 11.3% 증가, 전체 게임시장 매출의 55.9%를 차지했다.
게임 개발인력의 해외 유출도 심각하며 국내 인력 역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일례로 중국 게임 기업들은 이른바 ‘1-9-3 조건’(1년 연봉의 9배를 3년간 보장, 최고급 주택과 자녀의 외국인 학교 입학 보장)을 내세워 국내 인력을 뽑아가고 있다. 국내 게임 산업 종사자 수도 9만5051명(2012년)에서 8만7281명(2014년)으로 4.2% 감소하고 있고, 특히 제작 및 배급 인력은 13.5%라는 급격한 감소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망 외부성 현상, 성숙기 시장 진입, 온라인 게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 약화, 게임 인력의 해외 유출 및 종사자의 급격한 감소 등은 결국 게임 산업에서의 혁신의 부재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정부의 규제나 정책 측면에서 게임의 역기능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게임 업계에 전가하고, 이를 중독물질의 하나로 분류하려 하는 입법 기관의 규제 시도, 세계 시장의 규범이나 기준에 맞지 않는 한국만의 독특한 규제나 제도 등의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나 진흥 기관들이 스스로 새로운 기술이나 소비자의 변화, 시장의 변화 등에 적극 대응하고 이를 위한 파괴적 혁신을 전개해 나가는 노력의 부족이 아닐까 판단된다.
현재 게임 산업 생태계를 둘러싼 분야별 주요 변화를 통해 고민해야 할 정책적 방향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웨어러블로 대변되는 단말 분야의 변화가 게임시장의 변화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가상현실 콘텐츠 서비스 분야에서 PC나 콘솔 기반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제공하는 소니, 밸브, 가상현실(VR) 생태계의 리더십을 선도하고 있는 오큘러스(페이스북)와 스마트폰 기반의 삼성전자, 다이브(Dive), 제이스(Zeiss) 및 유튜브와 구글 점프를 통한 VR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구글 등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판단된다.
새로운 융복합 게임 측면에서는 온라인/오프라인 연계형 게임 분야와 앞으로 나아갈 목표의 시각화, 실시간 피드백, 결과에 대한 보상, 경쟁이나 협력할 수 있는 커뮤니티 제공 등 게임의 특성을 타 산업과 융합함으로써 높은 효과성, 효율성 제공이 가능한 게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 게임 산업의 신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인터페이스 측면에서는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통한 체감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및 특허 전쟁이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황인지(Context Awareness)를 통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기술 개발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기술 환경 변화에 적절한 선제적 대응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또 게임 수출국 다변화와 특화 전략을 통한 집중 지원정책도 절실하다. 현재 중국, 일본, 동남아 시장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1%에 달하고 북미, 유럽 등 기타 지역으로의 수출은 47%(2013년)에서 19%(2014년)로 급격히 쇠퇴하는 것은 글로벌 진출의 다변화 노력이 절실함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글로벌 진출 정책 사업은 국내 기업의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향후 권역별, 국가별 특화 전략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집중화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국가미래연구원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 2015’가 지난해 11월15일 폐막됐다. 행사 마지막 날 오전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 마련된 행사장에 관람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