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동북아 '판도라 상자' 사드에 촉각
중국, ‘사드 대응’으로 한반도 문제 중심 이동…한중관계 재설정 가능성
대북제재 중·러 협조 물건너가…‘한국 외교 자충수’ 지적 나와
2016-01-31 15:02:50 2016-01-31 15:19:26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냉전 시대로 돌아간 듯 한·미·일과 북·중·러가 편을 만들어 대립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사드를 평택 등에 배치하는 것을 한국이 용인할 경우,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정치·경제적 관계 훼손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단순한 관계 악화가 아니라 1992년 한중수교 이후 20여년간 형성되어 온 관계가 재설정될 가능성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28일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과 사드 배치에 관해 협상하고 있음을 이르면 다음 주에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후 나온 중국의 반응은 사드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을 보여줬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현재 반도(한반도)의 국면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하다"며 "유관 국가(한국)가 관련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매우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우리는 그 어떤 국가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때에는 다른 국가의 안전이익과 지역의 평화·안정도 고려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 활용되는 <환구시보>의 27일자 사설은 사드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사설은 “중국의 대북 제재에 관한 문제에서 한국은 너무 제멋대로여서는 안 된다”면서 “사드로 중국을 핍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드는 중국을 압박하는 도구라는 시각이 뚜렷했다. 또 사설은 "한국의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전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서울(한국 정부)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중·한 간 신뢰가 엄중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그 (한국)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사드를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감시하고 군사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대 탐지거리가 2000km인 사드의 레이더(AN/TPY-2 레이더)가 한반도에 배치될 경우 일상적인 군사 동향까지 포착될 것을 우려한다. 이에 한·미는 2000km까지 탐지하는 레이더는 ‘전진배치용’이지만 한반도에 배치할 사드의 레이더는 최대 1000km까지 탐지할 수 있는 ‘종말단계 요격용’이라며 반박한다. 그러나 8시간이면 ‘종말단계’에서 ‘전진배치’로 모드를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미 국방부 문서로 확인된 바 있어 중국은 한·미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이 주한미군 기지에 사드를 갖다 놓는 방식을 통해 한국이 미·일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편입될 것으로 본다. 한국은 직접 구매해 운용하려 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사드 배치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최근 사드를 ‘유치’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본 중국은 한국에 대한 입장을 다시 정리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중국은 미국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을 추구하는데 있어 일본과 전면적으로 협력할 수 없는 입장의 한국을 ‘약한 고리’로 여겨 왔다. 한국이 미·중 간 남중국해 갈등에서 미국에 다소 치우치는 입장을 보이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의 대북 압박이 필요하다고 채근하더라도 침묵해왔던 것은 중국이 한국을 ‘포섭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사드를 용인하는 쪽으로 나아갈 경우 중국은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경제·안보 모든 측면에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한중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정도로 급속히 악화되지는 않겠지만, 한국을 불신과 경계의 대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정세가 그런 흐름을 탈 경우 북한 핵실험 후 한국 정부가 밀어붙이는 ‘강력한 대북제재’도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그렇잖아도 이번 핵실험 후 그 어느 때보다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이 사드 변수로 인해 한국의 대북제재 협조 요청에 등을 돌려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남·북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비핵화하고 미국의 핵전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도 금지하는 것이 완전한 의미의 한반도 핵문제 해결”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단지 북핵을 없애는 것만은 아니라는 속내를 이례적으로 밝힐 정도로 북핵 문제를 보는 러시아의 태도가 3차 핵실험 때와 달라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사드 배치가 가시화할 경우 러시아의 대북제재 비협조는 불 보듯 뻔하다. 러시아는 ‘사드는 동북아 갈등 고조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해왔다.
 
이처럼 한국 외교의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사드 앞으로’를 외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13일 “사드 배치 검토” 발언을 하자 한민구 국방장관은 25일 “군사적으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걸음 더 나갔다.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조만간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드에 관한 한·미의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미국이 사드를 배치할 경우 평택 주한미군 기지가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 사드 레이더는 2.4~5.5km 안에 있는 차량과 항공기의 전자 장비를 훼손할 정도로 강한 전파를 쏜다. 지난해 12월 10일 언론에 공개된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기지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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