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가능’이 더는 생소한 수식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이 의제의 핵심 당사자는 누구일까. 기업이다. 현실적으로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현대아울렛 내 패션센터에서 금천구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이 주최하고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가 후원한 다섯 번째 ‘사회책임 토크 콘서트’의 주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지속가능 사회’였다. 연사로 나선 안치용 KSRN 집행위원장(토마토CSR연구소장)은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적절히 활용하며 CSR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사회의 순환구조를 설명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나오기까지
안 위원장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는 자본주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지만 하나의 구체적이고 특정한 논의로서 CSR은 하워드 보웬의 저서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이 발표된 1953년부터”라며 강연을 시작했다. CSR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지속가능경영은 1987년 유엔의 보고서 ‘우리 공동의 미래’ 이후에 논의의 틀을 갖췄다. 이 보고서의 핵심 주제인 ‘지속가능 발전’은 이후 지속가능경영을 비롯하여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등 수다한 영역에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CSR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관한 논의가 심화하면서 기업 외 다른 사회적 주체의 ‘책임’과 관련한 논의가 새로운 관점에서 촉발됐다”며 “‘CSR’이 사회책임(SR)으로 이행하면서 기업 외에도 노동조합 대학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머리에 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0년 11월 발표된 ISO26000은 기업뿐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사회 책임을 촉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회책임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을 의미하는 ISO26000은 다른 것도 아닌 바로 사회책임에 관해 인류가 합의한 국제 표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지속가능 경영이란 결국 “기업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자 중에서 특정한 이해관계자가 다른 이해관계자를 배제하거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음과 더불어 응당 기업이 감당해야 할 비용을 사회에 부당하게 이전하지 않음을 전제한다”고 말했다. 사회에 부당하게 이전한 내부비용의 대표사례가 온실가스이다. 비용의 부당한 외부전가는 동시에 부당한 이익내부화로 나타나게 된다. ‘비용과 이익의 온당한 역전’을 회계적으로 설명한 용어가 CSR의 핵심 개념인 ‘트리플 보텀라인(TBL: Triple Bottom Line)’이다.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이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성과, 즉 TBL을 극대화하는 경영기법인 것이다.
지속가능 사회에서 소비와 투자
안 위원장은 지속가능사회를 구현하는 데에는 기업의 패러다임전환을 뜻하는 CSR뿐 아니라 소비와 투자의 변화가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책임소비 혹은 윤리적 소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기업 자체의 윤리적 결단 수준에 머물게 된다”며 “사회책임소비에는 그 자체의 의미가 존재하고 기업이 꼭 소비자 때문에 CSR을 실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책임소비가 구조화하면 사회 전체로서 CSR을 체계적으로 추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극 구매와 불매라는 분명한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업이 타의에 의해서라도 사회책임경영을 실천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전방에서 사회책임소비가 CSR을 유인한다면 후방에서는 사회책임투자(SRI)가 CSR을 압박한다. 투자결정시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도 반영하는 SRI의 투자대상은 한마디로 CSR을 잘하는 기업이다. 안 위원장은 “자본시장에서 돈은 투자수익률(ROI)에 따라 움직이는데 투자수익률을 산정하는 방식이 기존 재무성과 일변도에서 최근에는 비재무성과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으며 점차 이런한 방식의 투자, 즉 SRI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재무성과를 측정하는 데 흔히 ‘ESG 평가’를 활용한다.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앞서 언급한 TBL에서 사회와 환경을 가져오고 거버넌스를 추가한 것으로, TBL과 함께 ESG는 CSR과 지속가능경영에서 자주 사용되는 성과측정 방법론이다.
사회보고의 중요성
사회적 기관으로서 기업은 다양한 공시의무를 지는데, 대표적인 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이다. 외감법에 따라 자산 100억 원 이상 기업이라면 의무적으로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감사보고를 비롯한 금감원 전자공시의 주요 내용은 한마디로 ‘재무적인 보고’이다.
안 위원장은 “CSR 혹은 지속가능경영의 안착과 발전을 위해선 ‘비재무 보고’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대기업의 비재무보고, 즉 사회보고를 의무화한 유럽연합 동향을 소개하며 한국 기업들이 서둘러 사회보고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3년부터 사회보고를 시행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특별히 ‘지속가능’이 들어가는 사회보고를 선호한다”고 안 위원장은 소개했다. 그는 “사회보고의 명칭에 ‘책임’보다 ‘지속’을 선호하는 현상에 우리 재벌경제의 천박하면서도 끈적한 욕망이 내재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엔 글로벌콤팩트(UNGC) 가입 기업들이 내는 약식 보고로 이행보고서(COP)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일종의 사회보고로 봐야 한다”며 “최근에는 기존 재무보고와 사회보고를 한 묶음으로 제출하는 통합보고(IR : Integrated Reporting)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선순환의 구조의 필요성
안 위원장은 “지속가능 사회로 가는 과정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책임의 선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사회책임경영, 사회책임소비, 사회책임투자가 맞물려돌아가는 구조가 형성되고 활성화하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사회로 가는 철길에 올라탄 기차와 같다”며 “이후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확보하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자본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이같은 사회책임의 선순환 구조가 힘을 발휘하면 대외적으로 단기 투기성 자본인 핫머니가 아닌 장기 전략적 자본인 쿨머니가 더 많이 유입돼 선순환을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안 위원장은 “사적 소유와 시장 기능을 근간으로 하되 공적 소유ㆍ통제로 보완하면서 시장에 대해서도 사회적이고 인간적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전체 강연을 갈무리했다.
안치용 KSRN 집행위원장(토마토CSR연구소장)이 CSR을 중심으로 한 지속가능사회의 순환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KSRN
KSRN 정연지 기자
편집 이동형 집행위원(www.ksrn.org)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