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통증은 왜 생길까?" - 통증이론의 발전
(의학전문기자단)최석민 자인메디병원 척추센터장
2015-12-01 06:00:00 2015-12-01 06:00:00
척추 신경외과 전문의인 필자에게 진료란 ‘통증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증의 진단과 치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약물치료, 물리치료, 주사치료, 시술, 수술 등 모든 종류의 치료법은 거의 대부분 통증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통증에 대해 더 잘 알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통증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지금까지도 일반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학자들이 통증 이론과 관련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통증의 시작과 전달, 그리고 인식과 관련된 해부학적 구조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 년 전 데카르트(Descarte)가 제안한 ‘특이성 이론(Specificity theory)’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 가장 신뢰받는 통증 이론이었다. 이는 손상된 조직, 통증 수용체, 신경섬유, 통증경로, 그리도 통증중추라는 명확한 해부학적 구조에 기반을 둔 이론이다. 특이성 이론은 해부학적 구조물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우울증, 신경과민 등의 심리적인 요소가 통증에 관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분명한 조직손상이 발견되지 않는 환자가 심한 통증을 호소할 경우 거의 대부분 정신병자로 취급되곤 하였다.
 
1965년 멜자크(Melzack)와 월(Wall) 박사는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을 발표하였다. 척수의 등뿔(Dorsal horn)에 마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처럼 통증의 강도를 조절하는 기전이 존재하며 뇌에서 척수로 전달되는 하행성 신호에 의해서도 통증의 강도가 조절된다고 하였다. 이 이론으로 인해 그 동안 통증의 기전과 관련하여 설 자리가 없었던 심리적 요인이 통증의 인식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게 된다.
 
그러나 '특이성 이론'과 '문 조절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의 종류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환상 지 통증(Phantom limb pain)’이다. 다리가 절단된 환자의 일부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라져 버린 다리에 견디기 힘든 통증을 호소한다. 기존의 이론에 의하면 통증이 발생되려면 조직의 손상에서 시작된 통증 신호가 신경섬유, 척수 등을 거쳐 통증 중추로 전달되어야 한다. '문 조절 이론'도 척수에서 통증의 정도가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이지 통증의 시작이 척수부터라는 것은 아니다. 이 사례를 통해 연구자들은 신경매트릭스(Neuromatrix)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 추정하게 되었다. 신경매트릭스 이론에서 뇌는 단순히 조직손상의 정보를 신경전달로를 통해 전달받아 수동적으로 인식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전적인 요소와 경험, 기억, 다양한 부위에서 전달되는 신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통증에 대해 능동적인 반응을 한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난치성 신경통에 대해 다양한 수술이 행해져 왔다. 척수신경근 절단술, 신경절 파괴술, 시상절제술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 대부분은 완전히 실패하여 이제는 전혀 시행되지 않거나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수술 모두 기본적으로 ‘특이성 이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치료법들이 또 한가지 간과한 것은 바로 신경의 ‘가소성(plasticity)’이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동일한 자극에 대한 통증 반응의 정도, 경로 등에 변화가 생긴다. 만성통증 환자에서 신경경로에 유전자 변화도 생긴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중요 통증 전달로가 파괴되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경로로 통증이 전달된다. 이는 통증 경로뿐 아니라 통증 중추에도 해당된다. 시상절제술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 중 한가지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핫팩(Hot pack), 초음파(Ultraound)와 더불어 가장 흔히 처방되는 기본 물리치료 종목 중 하나인 TENS와 난치성 척추통증 환자에 시도되는 ‘척수 자극술(Spinal cord stimulation)’은 문 조절 이론에 근거하여 통증의 조절을 통해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
통증 이론의 변화에 따라 약물치료의 패러다임도 크게 변하였다. 불과 수 십 년 전만 하더라도 한 가지 진통제로 통증 조절이 안되면 용량을 올리거나 다른 진통제를 추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주로 사용되는 진통제는 항염증 효과를 갖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척수나 뇌가 통증의 조절에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말초보다는 상위에 작용하는 약제들, 이를테면 마약이나 아편 양 진통제(Opioid analgesics), 항우울제 등의 처방이 급증하였다.
 
우리가 아플 때 처방 받는 간단한 진통제 한 알부터 최첨단 통증 시술 모두 알고 보면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통증에 대한 끈질긴 연구의 성과물인 것이다.
 
 
◇ 최석민 자인메디병원 척추센터장
 
- 중앙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 중앙대 부속병원 척추 전임의
- 우리들병원 전임의
- 광명성애병원 척추센터장
- 명지성모병원 척추센터장
- 명지성모병원 진료부장
- 명지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 검단 탑병원 척추센터 과장
- 김해 중앙병원 척추센터 과장
- 신경외과 학회 서울-경인지회 운영위원
-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문위원
- 대한 신경외과 학회 정회원
- 대한 척추 신경외과 학회 정회원
- 대한 통증학회 정회원
- AO spine 정회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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