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사라진다면
오늘 부는 바람은
2015-03-06 10:05:00 2015-03-06 11:12:16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이 국회 문턱을 ‘가뿐히’ 넘었다. 여론은 반겼고(찬성 68%), 국회는 따랐다(재석 247명 중 찬성 228명). 그런데도 이 법이 시행될지 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턱을 넘자마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여기저기 얻어맞고 있다. 나는 여기다 김영란법을 놓고 따질 생각이 없다. 그 법을 ‘다루는 법’이 문제니까.
 
언론은 ‘김영란 법의 국회 통과’ 속보를 띄우자마자, ‘김영란 법의 위헌 소지’를 머리기사로 내건다. 그 법의 칼날을 정통으로 맞는 탓이다. 그 날을 교묘히 비켜나간 국회의원들도, 저들 스스로 통과시킨 법안이 위헌이라 고백(?)한다. 스쳐 베이는 것도 아프니까. 머잖아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며 헌법재판소로 달려갈게다. 국민의 뜻을 떠받든다더니, 그 뜻을 헌법재판소에 떠넘기는 꼴이다.
 
1987년, 이 나라는 민주주의로 보다 가까이 갔다. 독재자와 민주주의 사이 갈등이 치열했다. 침 튀는 말싸움으로 끝내지 못했고, 말 그대로 피가 튀었다. 민주주의자들이 흘린 피는 곧 태어난 민주 제도의 산혈이었다. 헌법재판소는 개중 하나다. 1996년, 「5·18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헌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판결함으로써, 법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벌할 기틀을 짰다. 2013년, 박정희의 긴급 조치 1호, 2호, 9호가 위헌이라 판결했다.
 
“덕성이 좋은 제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덕성을 기른다”고 장 자크 루소가 말했듯이, 독재를 걷어내고 민주적 제도를 세움으로써 여기까지 왔다. 헌법재판소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법리를 세우고, 지난 독재 정권은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헌정파괴범’임을 증명했다. 이제는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독재자를 비판하는 데에, 그 누구도 목숨 걸지 않아도 된다. 헌법재판소의 몫은 여기까지다.
 
이른 나이에 사법시험에 붙어 기득권으로 된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과, 그가 뽑은 대법원장 그리고 그를 따르는 여당이 고른 아홉 명이 헌법재판관이다. 김영란법은 물론이거니와, 헌법재판소가 요즘 다룬 사회 갈등은 그들이 해결할 몫이 아니었다. 이 나라가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라면 말이다.
 
며칠 전,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는 위헌이라 판결했다. 지난 합헌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헌법도 간통죄도 그대로인데 판결만 변했다. ‘정치적’인 탓이다. 간통, 즉 결혼과 관련한 문제는 하나의 보편적인 잣대로 판단키 어렵다. 아내와 남편은 단 한 명, 이 상식적이 된 지는 백 년도 덜 됐잖은가. 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가 복잡하게 뒤섞인 문제다.
 
작년 말의 위헌 판결도 그렇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이 ‘위헌 정당’이라며, 법무부의 요구대로 해산을 명령했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자격을 빼앗고, 그 정당을 지지한 수십만 명의 정치적 견해를 부정했다. 국민의 표를 잃음으로써만 사라질 수 있는 정당을, 헌법재판소가 없애버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갈등을 국민 스스로 푼다. 갈등이 불거지고, 그게 복잡하다고 해서 헌법재판소라는 ‘바깥의 수단’에 의존적이 된 사회는 민주 사회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장치의 신)'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두고 말하길 “이야기의 결말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그 자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며, 기계장치와 같은 수단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말인즉슨, 민주 사회의 문제는 그 주인 되는 자들이 풀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 그 해결을 아홉 명의 ‘귀족’의 판결에 맡기는 사회는 귀족정이다.
 
◇김영란법 국회 본회의 의결 결과ⓒNews1
 
서종민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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