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디지털' 체험기)⑦노트북 없는 나는 '날개 없는 새'
2014-08-11 17:16:25 2014-08-11 17:21:01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어느덧 탈디지털 체험기 마지막 편에 이르렀습니다. 대미를 장식할 기기는 바로 노트북입니다.
 
사실 이번 기획에 노트북을 넣을까 말까 내부적으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업무 특성상 노트북이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죠. 실제 기자에게 노트북은 '밥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필수적입니다.
 
고민 끝에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노트북·데스크톱 없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노트북 없이 일주일을 지내봤더니 날개 꺾인 새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늘을 날아야 새인 것처럼, 기사를 써서 내보내야 기자인데 기사를 쓰기만 할 뿐 나머지는 도저히 진척이 되질 못했습니다.  
  
◇"일 하고 있지만 짐 덩어리된 느낌"
 
평소 노트북을 사용합니다. 노트북으로 해왔던 일들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니 일(기사작성·영상편집), 음악감상, 영화감상, 인터넷 검색 정도였습니다. 음악이나 영화, 인터넷 검색은 다른 기기들로 대체하면 됩니다. 문제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에 신문만 있던 시절에는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회사에 넘기면 편집기자가 기사를 편집해서 지면에 배치했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후에는 이런 방식으로 기사를 송고하는 곳은 없습니다.
 
요즘에는 기자들이 일선 현장에 배치돼 노트북을 통해 바로 기사 입력기에 기사를 올리면 회사에 있는 데스크들이 기사를 수정해서 출고합니다. 즉,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없이는 기사를 올릴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후배기자가 A4용지에 적힌 기사를 회사 인트라넷에 올리기 위해 일일이 타이핑 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그래서 노트북이 없는 기간 동안에는 종이에 기사를 쓴 후 그 내용을 누군가에서 대신 입력해 달라고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같은 기자실에 있으면 작성한 종이를 건넸고, 멀리 있으면 팩스를 보내거나 사진으로 찍어서 메신저나 이메일로 보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같은 부서 뿐 아니라 다른 부서, 매우 급한 사안일 경우 타사 기자들에게 타이핑을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매번 기사를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물색하기도 번거러웠고, 또 기사 올려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미안했습니다.
 
분명히 일은 하고 있는데 나로 인해 타인의 일이 더 늘게 되다보니 짐덩어리가 된 듯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근로의욕 저하..반나절만에 "나 포기할래"
 
'노트북 없이 살기'에 도전하기 전에 분명 고비가 여러 번 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왔습니다.
 
기자들은 평소에 취재기사뿐 아니라 기업이나 정부 등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처리합니다. 보통 이메일로 들어옵니다. 그 내용을 드래그해서 복사한 후 메모장이나 워드패드에 옮겨서 각 매체 양식에 맞게 수정하거나 문단을 재배열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취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평소 10분이면 보도자료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노트북이 없다보니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에 접속해서 보도자료가 있으면 종이에 손으로 일일이 써야만 했습니다. 손으로 쓰고 수정하고, 이를 타인을 통해 기사창에 올리기까지 40분이 걸렸습니다.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더군요.
 
선천적으로 성격이 급합니다. 성향상 속도감 있게 일을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보니 기사를 쓰기도 전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평소라면 기사 후다닥 처리했을 법한 내용임에도 손을 놓게 됐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써서 남에게 부탁하는 두 단계를 거치느니, 다른 사람이 바로 기사를 작성하는 게 시간 절약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아예 일 자체를 떠넘긴 겁니다.
 
◇왼쪽은 노트북 없이 살기 시작한 첫 날 오후 미션을 포기할까 갈등했던 순간. 오른쪽은 종이에 쓴 기사를 사진으로 찍어서 타이핑을 부탁하는 내용.(사진=뉴스토마토)
 
급기야 미션 시작한 지 7시간여 만에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보도자료 올리는 게 평소보다 4배 이상 오래 걸리는데 발제해서 취재하는 기사는 오죽하랴 싶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첫 날에는 발제 기사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노트북으로 기사를 쓸 때는 생각나는대로 쓴 후 쉽게 수정할 수 있고 전체 흐름을 본 뒤 맞지 않는 게 있으면 앞뒤 문맥을 통채로 옮길 수도 있지만, A4용지는 기사를 쓴 후 찍 그어서 또 쓰고, 공간이 없으면 다른 장에 써야 해서 또 정신이 없고...
 
그래서 노트북 없이 취재한 첫 번째 발제 기사는 총 일곱 번을 탈고한 끝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할 때면 오른손 엄지와 중지가 아팠고 하루종일 힘줘서 글을 쓴 탓에 후들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느낌은 미션이 진행되는 일주일 내내 이어졌습니다.
 
업무 처리 과정이 복잡해지면서 이번주 처리한 기사는 10꼭지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한 달동안 일주일 평균 26꼭지를 썼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기사를 쓰지 못한 셈입니다.
 
기자들은 각자 맡은 분야에 대한 뉴스를 끊임 없이 모니터링하곤 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노트북이 없으니 모니터링도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나름 5.5인치 대화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노트북에 비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거죠. 또 포털에 검색어를 넣으면 모바일 버전으로 뜨는데 이는 PC버전과 다르게 전체 기사를 검색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사만 보여주다보니 매번 설정을 다시 해줘야했습니다.
  
◇노트북 없어 생기는 작은 변화들
 
노트북이 없으니 출퇴근 길, 몸은 가벼웠습니다. 평소 노트북, 마우스, 노트북 어답터, 스마트폰, 칫솔, 파우치, 외장하드, 아이팟 및 이어폰, 다이어리, 펜, 카드지갑을 소지하고 다녔습니다.
 
이번주에는 노트북을 소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노트북 가방의 3분의 2크기인 크로스백을 들고 다녔습니다. 여기에 노트북과 어답터·마우스·외장하드 대신 책과 지갑을 넣어 다녔습니다.
 
◇왼쪽은 노트북 없이 지낸 지난 일주일간 약소화 된 짐들. 오른쪽은 미션 후 꾸린 짐꾸러미들. (사진=뉴스토마토)
 
무엇보다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접하게 된 변화는 평소에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기자실에는 아침과 점심에 신문이 옵니다. 간밤 어떤 기사가 나왔는지, 어느 매체에서는 어떤 내용을 보도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과가 빠듯하다는 이유로 본인이 담당한 분야의 이슈를 위주로 기사를 보게 됩니다. 
 
평소 노트북에서 검색어를 통해 모니터링을 했지만 이번주에는 하루 평균 다섯개의 신문을 정독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사회·문화·경제·증권 등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접하며 좀 더 거시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자리에 돌아왔더니 모 매체 기자가 제가 앉았던 곳에서 짐을 풀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기자들이 노트북을 사용하기 때문에 제 자리에 노트북이 없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토마토TV 임애신 노트북은 없어도 자리 이용 중입니다'라는 종이를 꼭 놔뒀답니다.
 
◇노트북이 없자 아무도 없는지 알고 다른 기자들이 자리에 앉는 일이 발생하자 이렇게 안내 문구를 작성해서 책상에 올려놨다.(사진=뉴스토마토)
    
이렇게 노트북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다른 기자들 눈에도 이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저에게 "노트북 없이 뭐하고 있어?"라고 묻는다거나 "노트북 잃어버렸어?"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노트북 없이 지내면서 신기했던 점은 발로 뛰는 일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하이마트·삼성디지털프라자·LG베스트샵 등 각종 전기전자 제품이 진열된 곳을 가서 직접 제품을 본다거나 출입처 관계자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노트북을 지키고 앉아 있어라'라는 지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라는 게 회사의 방침이죠. 그럼에도 괜히 '자리를 비운 사이 뭐가 터지지 않을까'라는 조바심이 일어서 기자실을 쉬이 떠나지 못했던 겁니다. 노트북은 '세상의 창'이라고 불리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매개일 뿐인데 지금까지 너무 여기에 구속됐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메신저 종류가 많아지면서 대화 창구가 늘었습니다. 키보드로 칠 때는 엄청난 스피드로 대화를 하면서 다른 업무를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할 땐 상황이 다릅니다.
 
평소에도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온갖 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주고 받다 보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특히 단체방의 경우 여러 명이 대화를 하다보니 동시에 메시지가 뜨면서 휙휙 위로 올라가는데,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혼자 뒷북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답답한 건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대화하는 사람들도 대답이 느리자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집에 수십자루의 펜이 있지만 평소 컴퓨터를 사용하는 탓에 사용할 일이 별로 없어서 펜이 제대로 나오는지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다.(사진=펜샵코리아 홈페이지)
 
저희 집 서랍 한 켠에 볼펜이 쌓여 있습니다. 필통 두 개 분량으로 약 80자루 정도 됩니다. 글씨를 써야하니까 출근할 때 펜을 넉넉하게 챙겨서 나왔는데 제대로 나오는 게 몇 안 돼서 버려야 했습니다. 
 
평소 글씨를 쓴다고 해도 다이어리에 일정을 정리하거나 일기장에 짧은 글을 쓰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 10년 간 이렇게 장시간 손에 펜을 쥐고 글씨를 쓴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프닝 비슷한 일도 있었습니다. 업무용 메신저를 세개 쓰는데요. 구글토크와 카카오톡의 경우 스마트폰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POP메신저는 노트북에서만 사용 가능하다보니 일주일 넘게 접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근무하는 중에는 매일 같이 메신저에 있던 사람이 일주일 간 로그오프로 돼 있자 '휴가 갔니?'부터 '혹시 그만둔거야?'라는 안부 인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노트북 없이 잘 버티다가 딱 한 번 후배 노트북을 빌려서 사용했습니다. 지난 7일 오후 5시28분부터 33분까지 약 5분 동안이었는데요. 최근에 이메일 비밀번호를 바꿨는데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아서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받고 여러 절차를 거쳤는데도 암호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트북으로 접속을 시도했습니다. 노트북에서는 금방 해결될 것이 스마트폰에서는 이렇게 힘들었다니...
 
컴퓨터로 업무를 하는 직업군이 비단 기자뿐만은 아닐 겁니다. 요즘에는 문서작성부터 파워포인트 작업, 디자인 편집, 음악 프로듀싱 등 다양한 범위에서 컴퓨터가 이용되기 때문이죠. 개개인의 업무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운영되는 매커니즘을 보면 컴퓨터화돼 있습니다. 컴퓨터 없이 일하는 것이 불가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컴퓨터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속도로 살아라'는 광고 문구처럼 노트북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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