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증거위조 의혹이 불거진 지 두 달여만에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고개를 숙였다.
남 국정원장은 15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본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화교 유가강(유우성) 간첩사건과 관련해 증거서류 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간첩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의 변호를 맡는 민변(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지난 2월 14일 "중국영사관에서 검찰 측 증거가 위조라는 회신을 보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달 19일 서울중앙지검이 조사에 착수한 지 두 달여만이다.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남 국정원장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 원장은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 왔으나, 일부 직원들이 증거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수사관행을 다시 점검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뼈를 깎는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TF를 구성해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NLL도발, 4차 핵실험 위협이 이어지고 있고 다량의 무인기에 의해 방공망이 뚫리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매우 엄중한 시기"라면서 "이런 시기에 국가 안보의 중추기관인 국정원이 이렇게 흔들리게 돼 비통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않아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전날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은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 6시간여만에 '대국민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사의를 표명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즉각 수리했다.
수사기관의 증거조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검찰의 '윗선' 기소가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모 처장(3급)에 그치고, 남 원장이 아닌 국정원 2차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오전 10시쯤 모습을 드러낸 남 원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읽은 뒤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라는 기자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취재진이 "간단하게라도 질의응답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국정원측은 "정중하게 사과하는 자리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지난달 9일 사과문을 발표할 당시 국정원은 피고인 유씨에 대한 호칭을 '유우성'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날 남 원장은 유씨에 대해 '유가강'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바꿨으며 '중국화교'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다.
국정원은 지난달 7일 간첩증거 위조 의혹이 불거지자 "국정원도 조작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지만 이틀 만에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사과한 바 있다.
국정원은 전날 밤 11시쯤 언론사 기자단에 연락해 남 국정원장이 증거조작과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통보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 체계에 허점이 드러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과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News1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