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이라크의 차리 유력 총리 후보인 아델 압둘 마흐디 하산 전 이라크 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라크 심장병 어린이 치료를 방문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국내 기업들의 이라크 투자와 진출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국내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이라크 진출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테러 등 정국 불안 때문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마흐디 전 이라크 부통령은 지난 16일 3박4일 일정으로 보좌관과 언론인 등 23명과 함께 방한했다. 마흐디 전 부통령 일행의 이번 방문은 한국-이라크 우호재단(이사장 한병도)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마흐디 전 부통령은 이라크전 직후 과도정부와 현 말리키 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하는 등 이라크 정치권의 실세로 통한다. 특히 이슬람최고평의회 총재인 암마르 하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그는 차기 총리 후보 0순위에 올라있다. 이에 정부도 마흐디 전 부통령의 이번 방한을 총리급으로 격상하며 공을 들였다.
현재 대규모 전후 복구사업을 진행 중인 이라크 정부는 신도시와 신공항·항만·철도·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참여와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때문에 일정 대부분이 한국 기업들과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구성했다. 차기 이라크 실권자로 올라섰을 때를 대비한 행보다.
우리 기업들 역시 이라크 재건사업에 대한 참여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침체된 국내 건설 불황을 타계할 해법이 이라크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차기 총리 후보자인 마흐디 전 부통령과의 사전 조우는 이라크 진출에 있어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이라크 정부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오는 2017년까지 2750억달러(300조)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재건사업에 쏟아 부을 계획이다. 국내 건설사에게는 더없이 좋은 희망의 땅인 셈이다. 이미 한화는 불안한 정세라는 위험요인을 감수하고 이라크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다.
마흐디 전 부통령은 한국 방문 기념으로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 인사와의 만남을 가진 후 삼성전자, 현대차, 카이스트의 자회사인 i-카이스트 등을 방문해 최신 정보기술(IT) 제품과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체험했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과의 만남도 성사됐다. 국내 건설사들은 이번 기회를 차기 총리와의 사전교감을 통해 향후 경제협력에 대한 기회로 삼겠다는 심산이다.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재건사업에 대한 신규 진출을 타진하는 가운데, 한화건설은 추가수주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다.
일정 첫 만남으로 마흐디 전 일행과 마주한 박의승 플랜트부문 부사장과 김형 부사장, 강형규 전무, 김경준 전무 등 삼성물산 실무를 책임지는 경영진들이 만찬회동에 총출동했다. 일단 삼성물산 측은 이라크 진출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역시 관건은 불안한 이라크 정세다.
만찬에 참석한 삼성물산측 관계자는 "삼성이 (이라크에) 선뜻 진출하지 못하는 건 (인명사고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신중히 접근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가 준비한 만찬에는 정진행 현대차 사장과 공영운 전무,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등 4명이 참석했다. 마흐디 전 부통령은 만찬회동 이후 취재진과 만나 현대차의 이라크공장 유치를 위해 노력했으며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현대건설의 이라크 진출 타진도 추진됐다. 현대건설은 내년 상반기 총 4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이라크 정유시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접촉 면을 넓히고 있다. 특히 성장의 대안을 해외에서 찾고 있는 현대건설은 제2의 중동 붐을 노린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이라크 재건사업에 뛰어든 한화건설 역시 마흐디 전 부통령의 방한을 놓치지 않았다. 일정 마지막 날인 19일 비공개 조찬회동을 마련했다. 당초 계획에 없던 일정으로, 한화건설이 급히 채널을 가동해 재단 측에 만남을 요청해 왔다.
한화그룹은 전방위적으로 이라크 재건사업에 공을 들이는 등 국내기업 가운데 선두주자 격이다. 김승연 회장의 의지는 여러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한화건설을 전후 재건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사실상 철수를 결정한 상황에서 김 회장의 결단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는 전언이다.
이는 곧 결과로 이어졌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5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 공사를 수주했다. 총 80억달러 규모로, 단독 프로젝트로는 해외진출 역사상 사상 최대다. 김 회장의 결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마흐디 전 부통령은 한화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신도시에 대한 우려도 털어놨다. 그는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전병철 상무보 등과 만난 자리에서 "비스마야는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아무리 좋게 짓는다 해도 사람들이 안 가면 텅 빈 도시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스마야는 바그다드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바그다드에 직장과 집·병원·대학 등 모든 생활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신도시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 특히 이주에 부정적인 이라크 국민들의 정서를 감암하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신도시의 흥행 여부는 이라크 정부는 물론 한화에게도 걱정거리다.
국내 기업들의 이라크 진출 여부는 현지 정세에 달렸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전후 내전으로까지 이어졌던 불안한 정국이 최대 걱정거리다. 테러로 인한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 수를 집계하는 시민단체 '이라크 보드 카운트'에 따르면 올해만 희생자가 8200명에 달한다. 이는 곧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진출을 망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흐디 전 부통령은 "좋은 정책들로 기업들이 느끼는 리스크를 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에 와서 만난 모든 기업들이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면서도 "모두 좋은 기업들이기 때문에 어느 기업의 투자가 유력한 지는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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