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고인이 되신 장준하 선생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고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 37년의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 더 빠른 시일내에 잘못된 사법부의 지난 과오를 바로잡지 못한 점에 대해 고인과 유가족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이 재심판결이 고인의 유가족들께도 명예를 회복하고 작게는 심적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유신헌법 개정 등을 반대한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의문사한 故 장준하 선생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장 선생에 대한 법원의 선고 이후 39년 만이며 장 선생의 유족이 지난 2009년 6월 재심을 청구한 지 3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유상재)는 24일 장 선생의 유족 측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유신철폐 및 반독재 투쟁에 앞장선 고인을 상대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한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사건"이라며 "2010년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유신헌법과 관련된 긴급조치위반 1호를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임을 선언했다. 본 재판부도 대법원의 판시에 전적으로 취지를 같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 선생의 경우 유신헌법에 대해 긴급조치위반 1호를 위반한 혐의를 받았지만,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무죄사유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유 부장판사는 판결에 앞서 "이 자리는 권위주의 통치시대에서 위법·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크나큰 시련과 옥고를 겪게 된 고인에게 국가가 범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공적으로 사과를 구하고 잘못된 재판절차로 인해 고인에게 덧씌워졌던 인격적 불명예를 뒤늦게나마 복원시키는 엄숙한 자리"라고 말했다.
유 부장판사는 이어 "재심사건을 담당하게 된 재판부로서는 국민의 한사람이자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한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하셨던 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잘못된 과거사로부터 얻게 된 뼈아픈 교훈을 바탕으로 기본권 보장의 최후보루로서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는 사법부가 될 것을 다시한번 다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장 선생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진행됐지만, 이례적으로 선고공판까지 이어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10년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장 선생에게 무죄를 구형한다"고 밝혔다.
이에 장 선생의 유가족인 장호권씨는 최후진술에서 "재심을 열어준 재판부와 무죄를 구형한 검찰에 감사하다. 재심까지 오래걸렸지만 국민의 신뢰가 얻고 있는 사법부가 살아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됐다"며 "사법부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1호는 재야 민주인사들의 유신헌법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1974년 1월 선포됐다. 이후 지난 2010년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장 선생은 유신헌법 개헌 필요성을 주장한 혐의로 체포돼 군사법정에 섰으며 1974년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장 선생은 이듬해 8월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망 원인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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