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진규기자] 우리나라 '철강 신화'의 주인공 故 박태준
포스코(005490)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명예회장은 1960년대 철강불모지인 우리나라에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사로 성장시킨 한국 철강산업의 큰 별이다.
◇ 박태준, '정신적 지주' 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
박 명예회장은 1927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1945년 와세다 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으나 해방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1948년 육군사관학교 6기로 졸업했다. 이때 당시 교관이었던 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에 발탁돼 정치인 박태준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후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해 경제인으로 변신한 박 명예회장은 1964년 1월 박 전 대통령으로 부터 대한중석 사장에 임명된다.
대한중석광업 사장에 취임한 박 명예회장은 군인 정신을 가지고 회사경영에 임했다. '짧은 인생을 영원조국에'는 그의 군인 시절 좌우명이다.
이후 박 명예회장은 '공정하고 정확한 인사관리와 면밀하고 계획적인 자금 관리'라는 경영 원칙을 가지고 만성 적자였던 대한중석광업을 1년 안에 경영정상화로 이끌었다. 경영인 박태준으로의 도약이다.
◇ 박태준, 포철 신화를 쓰다
박 명예회장은 1968년 11월 정신적 지주였던 박 전 대통령이 국가경제의 초석을 위해 종합 제철소 건설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몸을 바쳐서라도 제철소 건설을 이루겠다고 결심한다.
종합 제철소 건설은 1958년부터 시작돼 5차례나 무산됐다. 자금력과 기술력, 지도력이 부재했던 상황이다.
이후에도 1967년까지 3차례 더 시도됐던 현대적 종합제철소건설은 흐지부지 됐다.
이 와중에도 박 사장은 미국, 일본과의 철강 외교를 통해 제철소 건설과 관련된 협조를 요청한다.
우리나라는 1966년 12월10일 피츠버그에서 미국, 서독, 이탈리아, 영국 4개국 7개사로 이뤄진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를 발족한다. 하지만 KISA의 건설 예정 가격이 너무 비쌌고, 건설 책임과 절차가 자세하게 기술되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67년 9월5일 박태준 사장의 대한중석이 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의 책임자로 선정되고 박 사장이 종합제철 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9월28일 KISA와 한국 협상대표간 기본계약서 합의각서에 서명했지만 박 사장은 KISA의 건설 예정 가격이 너무 비쌌고, 건설 책임과 절차가 자세하게 기술되지 않는 등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돼 3일 뒤 기공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해 11월8일 기공식 한달 후 종합제철 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식 임명된 박 명예회장은 1968년 4월1일 자신이 가려 뽑은 38명의 창설요원들과 함께 포항종합제철 창립식을 거행한다.
종합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KISA 대표로 부터 차관조달이 거부돼 포철 프로젝트가 백지화 위기에 놓이게 되자, 박 명예회장은 '대일청구권자금' 사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일본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1969년 2월12일 도쿄로 이동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본 정·재계 인사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해 12월3일 한일 양국 고위관료와 경영자들은 포항종합제철 프로젝트의 기본 협정에 서명한다.
◇ 포항제철소 1고로 첫 출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가운데)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있다.
이후 1970년 4월 1기 설비 착공을 시작으로, 73년, 76년, 78년, 81년까지 4기 설비 종합준공한 포항제철은 조강연산 850만톤의 종합제철소로 거듭났다.
현재 포스코는 연산 3700만톤 규모의 조강생산을 기록하는 세계 4위권의 철강사로 성장했으며, 최근 철강경기 하락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철강사를 제치고 시가총액과 신용등급에서 모두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위 '철강왕'으로 칭송받는 미국의 카네기가 당대 35년 동안 연산 조강 1000만톤을 이루었지만, 박 명예회장은 당대 25년(1968~1992년)동안 연산 조강 2100만톤을 이뤘다.
포항제철 건설과정에서 보여준 박 명예회장의 뚝심과 추진력은 지금의 세계 최강 국내 철강산업의 밑거름이 됐다. 박 명예회장은 이후 '철강의 사나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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