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물류로봇이 가동중인 경남 거제 한화오션 특수선 4공장. (사진=한화오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려면 배를 만들 시설부터 준비해야 한다. 설계인력을 확보하고 장비를 발주하는 것과 함께 원자로 연계 작업, 방사선 관리, 특수 조립과 시험에 필요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 실제 필요한 시설의 범위는 원자로 공급방식과 작업분담, 안전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이 투자가 건조대금이 들어오기 전에 시작돼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먼저 준비하라고 요구한다면 투자비 회수조건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조선소의 입장에서 핵잠 시설은 일반 상선 건조설비와 다르다. 사업 전용성이 높고 다른 용도로 바꾸기 어려운 시설이 생길 수 있다. 안전기준 변경으로 이미 설치한 설비를 다시 고쳐야 할 가능성도 있다. 사업이 계획대로 이어지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지만, 연료 협상이나 정부 승인 때문에 착수가 늦어지면 시설은 사용하지 못한 채 유지비만 발생한다. 국가의 정책 결정이 기업의 장기 투자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다.
시설을 먼저 지어 놓으면 정부가 나중에 지원해 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이사회가 투자를 승인하기는 어렵다. 지원대상인지, 얼마까지 인정되는지, 언제 지급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건조계약 가격에 포함할 것인지 별도로 지원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지원 근거가 있어도 집행 기준과 예산이 불분명하면 기업이 체감하는 위험은 줄어들지 않는다. 투자결정에 필요한 것은 막연한 지원 가능성이 아니라 서면으로 확정된 조건이다.
제공된 개선 건의안은 특별법의 지원범위를 연구개발·건조·시험·정비·실증·안전관리와 그에 필요한 시설투자까지 넓히자고 제안한다. 이 방향은 타당하다. 함정 제작비만 인정하면서 필수 시설은 기업이 알아서 마련하도록 하면 사업비 일부를 장부 밖으로 옮기는 결과가 된다. 국가가 요구한 시설의 비용을 사업에 반영해야 실제 핵잠 확보에 필요한 재원을 파악하고 예산도 책임 있게 관리할 수 있다.
지원대상은 신설시설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기존 시설의 증설·개조, 설비의 취득·설치와 직접 관련된 설계·검사·인증 비용도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 방사선 관리구역이나 차폐·환기·계측시설, 특수 제작·조립·시험설비 등이 후보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시설을 모든 조선소가 같은 규모로 갖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와 업체가 작업분담과 투자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에 직접 필요한 범위를 특정해야 한다.
전용시설 지정 여부만으로 지원을 결정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행정적 지정이 늦어졌어도 정부가 요청하고 사업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면 지원 여부를 판단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공용시설은 핵잠 사업의 사용비율, 다른 사업의 부담과 잔존가치를 고려하면 된다. 국가가 전액 지원한 시설을 기업의 상업용 자산처럼 사용하는 일은 방지하되, 공용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투자를 모두 제외해서도 안 된다.
지원방식은 직접 지원, 계약금액 반영, 정부 소유 시설 제공 등으로 나눠 검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식을 택하든 지원한도와 업체 부담, 지급시기를 투자 전에 정하는 일이다. 특히 시설 완공 때까지 모든 비용을 기업이 먼저 부담하도록 하면 자금 부담이 커진다. 착수·중간·완료 단계에 따라 공정과 실제 투자내역을 확인해 지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정부도 공정 확인을 통해 집행의 적정성을 관리할 수 있다.
시설의 소유권과 사용권 역시 지원 이후로 미뤄서는 안 된다. 누가 유지관리비를 부담하고, 다른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지, 사업 종료 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지원한 금액을 다시 감가상각비나 계약원가로 청구하지 못하도록 중복보전도 막아야 한다. 지원과 통제는 함께 설계돼야 한다. 기업이 부담할 범위가 분명하고 국민의 세금 사용도 설명할 수 있어야 제도가 오래 유지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부 사정으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경우다. 조선소가 승인받은 계획에 따라 시설을 설치했는데 건조 척수가 줄어들면 당초 예정한 투자비 회수가 어려워진다. 이때 모든 시설비를 기업에 남겨 놓으면 다음 국가사업에서 선행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투자비 전액과 예상이익을 일률적으로 보상하는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 실제로 회수하지 못한 합리적인 비용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정산할 때는 이미 지급한 지원금, 다른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가치, 매각이나 전용으로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을 공제해야 한다. 업체가 불필요하게 투자 규모를 늘렸거나 손실을 줄일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도 따져야 한다. 완료한 시설과 진행 중인 공사, 취소할 수 없는 발주비를 구분하고 자료·설비 인계조건을 함께 정하면 국가와 기업 모두 예측 가능한 기준을 가질 수 있다. 사업 중단의 처리조건은 사업 시작 전에 준비해야 한다.
핵잠 시설투자는 장기간 국가의 건조·정비 역량을 축적하는 기반이다. 정부가 신속한 준비를 요구하면서 회수 가능성은 기업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면 투자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시설지원의 법률상 근거를 분명히 하고 정부는 시행령과 투자협약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조선소가 승인된 투자의 비용과 책임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필요한 시설이 제때 준비된다. 국가의 준비 의지는 그 투자조건에서 확인된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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