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과거사 피해자가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소송에서 패소했더라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면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 같은 원칙은 개정된 과거사정리법이 시행된 2월 전부터 재판 중인 사건에도 적용된다고 봤습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사진=뉴시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23일 한국전쟁 전 경찰에 의해 총살된 민간인의 유족 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피해자는 1949년 7월 경북 영덕에서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의해 재판 절차 없이 총살됐습니다. 유족들은 2012년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했으나 법원은 사망 시점부터 5년이 지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청구를 기각했고, 이 판결은 2014년 확정됐습니다.
이후 유족의 신청을 받은 진실화해위는 피해자를 포함한 민간인 20명을 군경이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가 불법이라는 진실규명 결정을 2023년 8월 내렸습니다.
이에 유족들은 진실규명 결정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재차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의 쟁점은 패소가 확정된 선행소송의 기판력이 이 사건에도 미치는지였습니다. 기판력은 앞서 확정된 판결의 쟁점과 내용에 대해 추후 다른 소송에서 다툴 수 없도록 하는 판결의 효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1심과 원심은 모두 이미 패소 판결이 확정된 만큼 동일한 내용의 손해배상을 다시 청구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올해 2월 시행된 개정 과거사정리법이 과거사 피해자들의 재청구를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정법 61조(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는 진상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는 국가재정법상 소멸시효(5년)와 민법상 소멸시효(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이 법 부칙 5조에 따르면, 시행 전에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는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거나 이를 이유로 패소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개정법 시행 이전에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졌다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패소 판결이 확정됐더라도 희생자 유족 등은 개정법 시행일로부터 3년 내 다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는 개정법 시행 전 이미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돼 법 시행 당시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같다”며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정법은) 국가가 과거 반민주적·반인권적 행위의 희생자 배상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장기소멸시효 기간을 배제하거나 스스로 시효이익을 포기하고,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새로 제기하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한 청구기각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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