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군인들)④‘제2의 변희수’도 어려워…트랜스젠더 군복무 논의 시작해야”
박한희 변호사 “간부와 병사 구분해 제도 설계해야”
강제전역 취소 판결 뒤에도 인사·생활 지침은 공백
“원해서 갔든 징집돼 갔든 군 안에서는 안전해야”
2026-09-01 16:03:07 2026-09-01 16:25:59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트랜스젠더를 군대에 보내자거나 보내지 말자는 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미 군 안에 트랜스젠더가 있다. 원해서 들어갔든 징집돼 갔든, 가장 중요한 것은 군 안에서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이다.”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트랜스젠더 변호사이자 인권활동가인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9월1일 <뉴스토마토>와 만나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자원해 군인이 된 간부에게는 직업을 선택하고 복무를 이어갈 권리가, 병역 의무에 따라 입영하는 병사에게는 적정한 병역 처분을 받고 안전하게 복무할 권리가 핵심이라는 설명입니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사진=박한희 변호사 제공)
 
“강제전역 6년 지났지만, 논의 멈춰 있어”
 
박 변호사는 “변희수 하사 사건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정책은커녕 트랜스젠더 군인을 위한 매뉴얼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며 “제2의 변희수를 막을 제도가 없는 것을 넘어, 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할 ‘제2의 변희수’조차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고(故)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된 지 6년, 전역 처분을 취소한 법원 판결이 나온 지도 5년이 지났지만 후속 대책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대전지법은 2021년 성별 정정을 마쳐 법적으로 여성이 된 변 하사를 남성 군인으로 전제한 채, 성 확정 수술에 따른 신체 변화를 심신장애로 판단해 강제 전역시킨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면서 복무 중 성별을 정정한 군인의 복무 여부에 관해서는 국가 차원의 입법·정책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국방부도 2021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성전환자의 현역 복무 관련 연구’를 맡겨 2023년 보고서를 제출받았습니다. 조사 결과 병사 42.6%, 간부 33.8%가 성전환 간부의 복무에 긍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 군 내부에도 트랜스젠더 간부의 복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국방부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고, 연구 결과도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둘러싼 정책적 논의는 사실상 멈췄습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들이 2024년 1월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별 불일치 병역 판정 기준 개정안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사진=무지개행동)
 
“치료 이력에 좌우되는 병역 판정 기준 바꿔야”
 
박 변호사는 우선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따르면 성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정한 트랜스남성은 전시근로역에 편입돼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없습니다. 반면 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된 트랜스여성은 성별 불일치 진단을 받더라도,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라 6개월 이상의 호르몬 치료 이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4급 보충역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모든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를 받거나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아도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다”며 “검사규칙은 법률상 근거 없이 특정한 의료 조치를 사실상 강제해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호르몬 치료를 기준으로 한 현행 규칙은 의료적 조치를 원하지 않거나 받을 형편이 되지 않는 트랜스여성이 군 복무 대상이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검사규칙에 따르면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은 트랜스여성은 현역이나 보충역 복무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성소수자 군인을 위한 보호 조치가 없는 군대에서 차별과 인권침해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포괄하도록 부대관리훈령 개정해야”
 
박 변호사는 부대관리훈령을 개정해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장병의 인권 보장 원칙을 담아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현행 부대관리훈령 제4편 ‘사고 예방’에는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에 관한 장이 있습니다. 해당 장은 동성애자 병사를 평등하게 대우하고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칙과 함께, 가혹 행위와 괴롭힘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성소수자 장병의 복무를 ‘사고 예방’ 차원에서 다루는 것부터 문제”라며 “성소수자의 인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훈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트랜스젠더 장병의 복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한 기준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트랜스젠더 장병에 대한 생활 공간, 호르몬 치료 및 휴가와 보직 조정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차별이나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지휘 계통을 거치지 않고 상담하거나 신고할 수 있는 독립적인 구제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미국, 영국, 캐나다를 포함한 다수 선진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인정하며, 의료 및 휴가 등의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캐나다군은 2019년 ‘트랜스젠더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해당 지침에는 관련 성별 포용 지침에는 호칭과 화장실·탈의실·숙박시설 이용 등에 관한 세부 기준도 담겨 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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