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분열은 악인가
2026-06-22 06:00:00 2026-06-22 06:00:00
요즘 정치권을 보면 여야가 갈라서고 당내 계파가 충돌하고 지지자들 사이에 담론 내전이 벌어진다. 지자체 선거가 여당의 완전한 승리도 아닌, 야당의 완전한 패배도 아닌 것으로 귀결되자 분열의 양상은 더 극한 상태로 치닫는 것 같다. ‘내부 총질 그만하라’는 비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분열의 파고는 점점 더 높아지고 거칠어질 것이 분명하다.
 
언론은 이런 싸움을 사실상 부추긴 뒤 어김없이 ‘분열의 정치’라고 개탄한다. 분열이라는 단어가 거의 죄악처럼 쓰인다. 통합은 선이고, 분열은 악이라는 이분법이 우리 정치 담론을 지배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헤겔의 변증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안다. 씨앗이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는다. 분열은 부패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의 문법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차이를 전제로 한다. 이익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민주 정치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를 드러내는 분열은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이다. 억압된 통합, 봉합된 갈등, 침묵을 강요받은 소수, 이것이야말로 오히려 민주주의의 위기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경험한 분열들을 돌아보라. 지역주의라는 분열은 추악했지만 그 분열 속에서 다당제의 씨앗이 자랐다. 박근혜, 윤석열의 탄핵으로 여야 분열은 나라를 뒤흔들었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주권자는 더욱 강력한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드러냈다. 분열이 에너지를 방출했고, 그 에너지가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었다.
 
해외 사례도 다르지 않다. 미국 민주당은 2016년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사이에 격렬한 분열을 겪었다. 당시 많은 이들이 민주당의 분열을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그 분열이 없었다면 의료보험, 최저임금, 기후변화 같은 의제들이 미국 정치의 전면에 그토록 강렬하게 부상할 수 있었을까. 
 
물론 분열이 다 같지는 않다. 문제는 분열의 성격이다. 가치와 정책을 둘러싼 분열은 건강하다. 이것은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공개 토론이다. 반면 권력을 향한 사익의 분열, 혐오와 배제를 먹고 자라는 분열은 파괴적이다. 전자는 민주주의의 근육을 키우고, 후자는 민주주의의 뼈대를 갉아먹는다.
 
오늘 우리 정치의 분열이 어느 쪽인지를 물어야 한다. 여야의 분열이 국민의 삶을 놓고 다투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선거를 향한 집단 이기주의의 충돌인지. 당내 분열이 더 나은 노선을 향한 진지한 성찰인지, 아니면 계파 생존의 암투인지.
 
그러나 이 물음 앞에서도 섣부른 통합의 요구는 경계해야 한다. '대화하라', '화합하라'는 구호가 때로는 강자의 언어로 작동한다. 불평등한 현실을 봉합하는 가짜 통합, 약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조기 화해는 통합의 외양을 한 지배다.
 
진정한 통합은 분열을 거친다. 충분히 싸우고, 충분히 드러내고, 충분히 다툰 끝에 도달하는 더 높은 질서. 그것이 변증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정치의 문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그 분열이 파괴가 아닌 생성으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지혜다. 통합은 목적지가 아니라 분열을 통과한 자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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