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인터넷이 개방과 공유를 기반으로 성장하며 정보사회 시대를 열었지만, 인공지능(AI) 시대 들어서면서 폐쇄형 플랫폼 생태계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데이터를 중심으로 이용자를 자사 생태계에 묶어두는 락인 구조를 강화하는 까닭입니다. 이에 국내에서도 데이터와 기기, 플랫폼 간 연결성을 높이는 '상호운용성' 확대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입니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기술 상생 발전과 소비자 편익 확대를 위한 상호운용성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는 AI 시대 상호운용성이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 선택권을 좌우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정부와 국회, 학계는 폐쇄형 디지털 생태계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이용자 선택권도 제한하고 있다며 제도적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원철 숭실대 교수는 "나의 데이터를 어떤 디바이스나 플랫폼에서도 자유롭게 접근·이동할 수 있는 것이 상호운용성"이라며 "피지컬 AI와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데이터와 기기 간 연결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상호운용성은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넷 발전 자체가 개방과 공유 정신 위에서 성장해왔다는 점도 상호운용성을 확대해야 하는 배경으로 제시됐습니다. 송경재 상지대 교수는 "정보 재화는 개방과 공유를 통해 가치가 증식되는 구조"라며 "상호운용 가능한 기술과 협업이 앞으로 혁신과 경쟁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영국 한신대 교수도 "고립된 혁신은 도태하고 연결된 혁신이 살아남는 시대"라며 "상호운용성과 데이터 이동성은 개방형 디지털 생태계의 핵심 전제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 기술 상생 발전과 소비자 편익 확대를 위한 상호운용성 개선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뉴스토마토)
정부 역시 AI 시대 상호운용성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글로벌 AI 신약 개발 기업 인실리코 메디슨을 사례로 들며 "전 세계에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해 신약 개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데이터가 흐르고 API가 열리며 기기가 소통하는 구조가 AI 시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럽연합(EU)과 영국 등도 데이터 흐름과 API 개방 확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정부도 법·제도 기반 마련을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동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사무처장도 "현재 디지털 시장은 특정 사업자 시스템 내에서만 서비스가 이뤄지는 폐쇄형 생태계 구조"라며 "락인 효과로 기술 독점과 이용자 이탈 방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입법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조혜신 한동대 교수는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대표 사례로 제시했습니다. DMA는 애플·구글 등 게이트키퍼 사업자들에게 데이터 이동성과 상호운용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애플 iOS와 아이패드OS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능 개방 절차도 진행 중이며, 타사 기기의 아이폰 연동 확대와 구글 검색 데이터 공유 문제 등도 주요 논의 대상입니다.
해외에서 관련 입법과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AI 시대를 대비한 상호운용성 확대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개방형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상호운용성 정책방향 및 과제 보고서에서 특정 클라우드와 AI 모델에 종속되는 구조가 또 다른 기술 고착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하며, 공통 모델 포맷과 표준 API, 데이터 이동성 보장 등을 통해 AI 모델과 서비스가 특정 사업자 환경에 묶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에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이날 모바일 OS 사업자에게 운영체제 상호운용에 필요한 기술적 접근수단 제공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정헌 의원은 "AI와 디지털 기술이 국가 주권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며 "거대 플랫폼이 독점한 API와 데이터를 개방해 서비스 간 연동을 보장하는 것이 소비자 편익 확대와 시장 공정성 회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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