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국민 고등어의 변신
2026-03-27 06:00:00 2026-03-27 06:00:00
고등어는 언제나 밥상 위 삶의 이야기였다. 비린내보다 먼저 떠오르는 연탄불 위 익어가던 저녁 풍경. 하루를 버텨낸 서민들의 허기를 채우는 안도이기도 했다. '국민 생선'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오래도록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현대사의 식탁에서 고등어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된 배경은 분명하다. 한국전쟁 이후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저렴한 고등어는 몇 안 되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는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자반고등어가 생존의 기술을 보여준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한 지혜, 그 지혜는 바다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왔다. 손자의 밥상에 올리기 위해 할머니의 손길은 늘 시장길 고등어 한 토막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산업화 시기,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에게도 고등어는 빠질 수 없는 단골 생선이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고등어 굽는 냄새는 골목을 타고 번졌고 하루를 위로하던 아버지 시대를 기억한다.
 
어릴 적 두 마리를 꿰어 팔던 고등어는 우리 가족 3남매의 한 끼를 넉넉히 채웠고, 가을이면 살이 오르고 겨울이면 더 깊은 맛으로 '국민 생선'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학 속에도 고등어는 인상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노동 현장의 고된 현실, 인간관계의 단절, 사랑과 삶의 방향에 대한 혼란 등 '80년대 운동권'의 아픈 이야기를 담아낸 공지영 작가의 소설 <고등어>에는 격변의 시대를 통한 연민이 녹아있다.
 
고등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사회의 모순을 비추는 상징이자,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의 현실을 은유한다. 일상적으로 먹어온 고등어 생선이 우리 자신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고등어는 시대의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 생선'이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은 이전과는 결이 달라졌다. 1~2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 식생활 변화만을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고등어는 사실상 삼중고에 직면했다. 국내산 대형어 어획량은 줄고 노르웨이산 수입마저 반 토막 났다. 이미 한 손(2마리) 고등어는 '만원 시대'로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중동발 리스크로 유가·물류비가 폭등하며 불안한 식탁을 맞고 있는 게 현주소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비상경제 대응 방안'을 통해 돼지고기, 계란, 쌀 등 23가지 물가 특별 관리 품목에 고등어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하방 경직성을 깨기 위한 해양수산부의 선제적 방어 전략은 남다르다. 기존처럼 단순한 정부 할인 지원이 아닌 유통의 재구조화를 실험 중이다.
 
할인 가격에 수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수산대전은 사실상 '실속형' 전략인 셈이다. 그 고민은 김성범 차관이 생각해온 의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씨알 굵은 대형어로 두 마리를 꿰어 팔던 관습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 이번 '국민 실속 고등어'다. 
 
국민 실속 고등어는 300~400g대의 소형 고등어를 대량 공급하는 방식으로 씨알은 다소 작지만 네 마리로 구성한 6900원(해수 지원 할인가)의 고등어다. 두 마리에 9900원 하던 대형어 대신 네 마리의 6000원대 실속형 매대에는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작아서 걱정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 차이가 없다"는 해수부 직원들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현장에 반영한 결과다. 김성범 차관은 "고등어 '만원 시대'는 서민 식탁에 큰 부담"이라며 "유통 구조 혁신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합리적인 상품이 최우선이다. 단순히 가격만 낮춘 것이 아닌 규격의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소비 시장을 개척하는 시도"라고 언급했다.
 
해수부는 주요 대형 마트와 연계해 전국적인 물량 공급 체계를 가동하고 그 효과를 정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 즉, 크기 중심의 시장을 무게와 실속 중심으로 재편해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물가 안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 내제돼 있다.
 
부산 메가마트의 고등어 코너 관계자는 "기존보다 판매량이 2배 늘었다"고 말했다. 현장 소비자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한 소비자는 "예전만큼 크진 않아도 먹는 데는 큰 차이 없는 것 같다. 가격이 이 정도면 오히려 부담 없이 살 수 있어 좋다"며 화색 했다. 다른 소비자는 "요즘은 생선을 집에서 잘 안 해 먹기도 하는데 이렇게 싸게 나오니까 오랜만에 사게 된다"고 했다.
 
중동발까지 더해진 고유가는 운송비를 자극하고 생산 기반을 점차 약하게 만든다. 수입 여건까지 악화돼 가격 상승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가격만 깎아주는 기존 할인 정책이 보다 실속형 고등어처럼 시장의 근본적인 흐름에 맞춘 변화가 실질적 민생물가 관리라는 걸 정책당국자들은 알아야할 때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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