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진격의 2라운드)③‘실탄’ 없는 진격은 없다…최종병기는 ‘금융’
성능으로 이겨도 금융서 지면 끝
미·프, ‘금융 탱크’로 시장 싹쓸이
2026-01-12 14:55:33 2026-01-12 15:11:36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2026년 글로벌 방산 시장은 ‘총성 없는 금융 전쟁터’입니다. 무기체계의 기술적 우위는 기본 사양에 불과합니다. 최대 수십조 원대 계약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는 결국 ‘돈’입니다. 구매국들은 이제 “성능이 얼마나 좋은가”를 묻는 단계를 넘어 “얼마나 낮은 금리로 얼마나 오랫동안 연불(할부)로 살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따지고 있습니다.
 
자금을 앞세워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과 프랑스. (사진=구글 제미나이)
 
폴란드 금융 발목…수은법 증액 한계
 
정부는 2024년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법) 개정을 통해 법정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며 대형 방산 수출을 둘러싼 단기적인 금융 불안을 진화하는 데 나섰습니다. 그러나 방산 수출이 조원 단위 ‘빅딜’로 상시화된 구조에서, 단순한 자본금 증액만으로 중장기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됩니다.
 
수은법상 수은은 특정 차주(국가 또는 기업)에 대해 자기자본의 40%까지만 신용공여를 할 수 있습니다. 방산 수출은 계약 한 건만으로도 수십조 원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 단 한 번의 대형 계약으로 여신 한도가 빠르게 소진되는 구조입니다. 단적인 예로, 2022년 체결된 폴란드 1차 지상무기 수출 계약은 약 17조원 규모였는데, 당시 수은은 폴란드 측에 약 6조원 안팎을 대출하며 자기자본(약 15조원)의 40%에 육박하는 여신 한도를 사실상 소진했습니다. 그 결과 약 30조원 규모로 논의되던 2차 수출 계약을 앞두고 수은의 추가 금융지원 여력이 크게 제한되는 상황이 나타났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는 수은법 개정을 통해 자본금을 늘려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폴란드 정부는 잠수함 도입 사업을 두고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24(Defence24) 등은 한국과의 방산 계약이 확대될수록 폴란드의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과 함께, 한국 수출금융의 자본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추가 계약이 이뤄질 경우 금리나 대출 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잠수함처럼 사업 규모가 크고 장기간에 걸친 금융 제공이 전제되는 사업에서, 추가 금융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의문이 제기된 셈입니다. 이미 지상무기 계약 과정에서 한국 수출금융의 구조적 한계를 경험한 폴란드로서는, 잠수함 사업에서도 “같은 금융 구조로 장기간 안정적인 이행이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 과정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폴란드 사례는 향후 수주전에서 한국이 마주할 구조적 과제를 미리 보여주는 전조로 해석됩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캐나다의 경우 자체적으로 국방비를 소진해야 하는 상황이라,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과 관련해 아직까지 수출금융 지원 요구는 없습니다. 하지만 경쟁국 독일은 자국 정부가 계약의 주체가 돼 이행을 직접 보장하는 정부 간 거래(G2G) 방식의 대규모 금융 보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캐나다가 최근 비유럽 국가 최초로 유럽연합(EU)의 공동 군사 조달 및 방산 투자 프로그램인 ‘SAFE’에 참여하기로 함에 따라, 독일을 포함한 EU 주요국들은 캐나다가 약 1500억유로(약 220조원) 규모의 군비 기금 대출을 원활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무상 양도 카드로 제시됐던 우리 해군의 1번 잠수함 ‘장보고함’이 지난해 11월9일 경남 진해군항을 출항하며 마지막 항해에 나서고 있다.
 
수주 족쇄 풀 ‘전략수출금융기금’ 신설
 
세계적인 방산 강국들은 이미 강력한 금융 방패를 구축해놓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 방산 금융 모델을 운영하는 미국은 국방안보협력국(DSCA)이 구매국을 대신해 방산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품질과 이행을 보증합니다. 대외군사금융지원(FMF) 프로그램을 연계해 우방국에 무기 구매 자금을 무상원조하거나 저리로 융자해줍니다. 무기 판매와 금융지원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패키지로 운용하는 구조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 수출신용기관인 공공투자은행(Bpifrance)을 중심으로 민간은행과 연계한 방산 수출 전용 금융을 운용하고 있으며, 대통령이 주요 방산 수출국을 직접 방문해 금융지원과 기술이전을 포함한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추진해왔습니다. 2021년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된 약 190억달러 규모의 라팔 전투기 계약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세계 무기 이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주도 금융·외교 지원에 힘입어 프랑스는 전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미국에 이어 9.6%의 점유율로 2위를 유지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강력한 ‘금융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재정경제부는 올해 상반기 중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전략수출금융기금’을 출범시킬 계획입니다. 기존 정책금융의 구조적 한계를 돌파할 ‘제3의 금융 플랫폼’으로, 수은법상 특정 국가 여신 한도를 풀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고위험·장기 프로젝트에 과감히 베팅할 수 있는 별도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 출연금과 정책금융기관 자금뿐만 아니라, 수출 수혜 기업의 기여금(이익 공유)을 포함하는 민관 합동 방식으로 조성됩니다. 기금 운용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중소·중견 기업에 재투자할 방침입니다. 
 
박원희 방위산업공제조합 실장은 “방산 수출의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원스톱 금융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며 “구매국에는 저금리 장기 금융을, 국내 중소기업에는 보증·공제를 적기에 공급하는 전문 금융기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끝>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룸에서 '전략수출금융기금 신설' 등이 담긴 올해 '경제성장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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