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범 설계자 역할 자임 선언"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중국이 20년 만에 '군비통제 백서' 발표한 까닭은
2025-12-19 06:00:00 2025-12-19 06:00:00
중국이 지난달 27일 '새로운 시대의 중국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이란 제목의 군비통제 백서를 발표했다. 중국의 군비통제 백서? 일단 낯설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이후 20년 만에 나왔다. 국제 핵 확산 위험이 빠르게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지난 9월3일 오전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DF)-61이 공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은 군비통제와 관련해 단일 백서를 발표하지 않는다. 백악관의 국가안보전략(NSS)을 기조로 국방부가 국방안보전략(NDS)과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원칙·억지 전략·군비통제에 대한 기본 입장을 담은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발표하는데, 행정부마다 1회 정도 나온다. 국무부는 전체 기조에 맞춰 매년 '군축·비확산 이행 평가' 보고서를 내고, 의회 조사국(CRS)도 군비통제 체계 전반을 분석한 보고서를 거의 매년 발표한다.
 
이번 중국의 백서에 대해 국내 언론 대부분은 '한반도 비핵화' 대목이 빠졌다는 데 주목했다. 2005년 백서는 '국제 군비 통제와 군축을 적극 추진' 부분에서 "관련 국가들이 한반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비핵지대를 설립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백서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아예 빠졌다는 것이다. 대신 이번 백서는 '핵 비확산' 부문에서 "중국은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항상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에 힘써왔으며 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를 대체했다.
 
중국은 2017년 발표한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안보 협력 정책' 백서에서도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핵 개발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명시하고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한반도 및 동북아의 장기적 안정 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을 '한반도 3원칙'으로 제시하면서 비핵화 과제를 빼놓지 않았으나, 8년 동안의 정세 변화 속에 정부가 내는 공식 백서에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사라진 것이다.  
 
중국의 '2025 군비통제 백서'는 한반도 비핵화 삭제 대목을 제외하고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지역전략연구실 박병광 박사는 지난 16일, 이 백서를 "'책임 있는 강대국' 이미지 구축을 향한 전략적 선언"이라고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중국 정부가 첫 군비통제 백서를 발간한 것은 1995년이었다. 국제사회에 군비통제, 군축 문제와 관련해 "저수준 방어력 유지, 군비 경쟁 회피, 국제 군축 참여, 군축과 평화 추구"라는 공식 입장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2025 군비통제 백서, 발표 시점 전략적 선택
 
10년 뒤인 2005년 백서는 기존 군축 분야에 더해 핵·생물·화학무기, 재래식무기, 우주·미사일 분야, 무기 수출 통제, 지역 군축 및 신뢰 구축(CBM)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했다. 보고서는 이를 "2005년 백서는 1995년의 군축 중심적 접근에서 벗어나, 비확산과 수출 통제, 지역 안보 협력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군비통제·비확산 정책 문서로 성격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1, 2차 백서를 10년 간격으로 발표했던 중국은 왜 20년이나 지난 2025년에 다시 군비통제 백서를 발표했을까. 보고서는 중국이 발표 시점을 전략적으로 선택했다고 본다. "유엔(UN) 창설 80주년이자 중·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승리 80주년이라는 상징적 해를 맞아, 국제질서 재편 속에서 중국의 역할과 책임을 부각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어 현재의 국제안보 환경이 "지역 분쟁과 군비 경쟁이 심화하고 군축·비확산 과제는 확대되었으며, 우주·사이버·인공지능(AI) 등 '신흥 분야'가 새로운 전략적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전통적 군비통제 틀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국은 1995년·2005년 백서의 군축 중심 접근을 넘어 포괄적 군비통제·비확산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중국은 백서를 통해 자신을 "세계 평화 건설자, 국제 질서 수호자, 다자 안보 체제의 핵심 기여국"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립하고 '책임 있는 강대국'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이번 백서는 △국제 안보 및 군비통제의 엄중한 현실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정책과 입장 △국제 군비통제 및 비확산에서의 건설적 참여 △우주·사이버·AI 등 신흥 분야에서의 국제 안보 거버넌스 주도 △비확산 및 과학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국제 협력 강화 등 다섯 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열병식이 지난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 10월 11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규범 경쟁' 주도권 확보 전략"
 
보고서는 이 중에서 "백서의 특징은 전통적 군비통제를 넘어 신흥 안보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국제 규범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규칙 제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며 이를 "기술·안보 연합을 강화하는 미국과 서방에 대응해, 신흥 안보 질서의 '규범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종합적으로 이번 백서를 "중국이 국제 군비통제 질서의 위기 속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규정하고자 하는 전략적 문서"이며 "국제 군비통제 체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국이 새로운 규범 설계자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일종의 전략적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한반도 비핵화' 문구 삭제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를 국제 비확산 의제의 중심에서 분리시키고, 전략적 관리 대상으로만 다루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책임 있는 대국' 이미지를 위한 외교적 언사 뒤에 숨겨진 실질적 군사력 확대와 북핵 문제의 주변화 흐름을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변화된 국제안보환경에서 자타공인 '새로운 규범자'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공개 인정한 것처럼, 세계는 명실공히 주요 2개국(G2) 시대가 됐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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