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고려아연이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 규모의 전략 광물 제련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일환으로 미 정부 측이 고려아연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할 예정인 가운데, 영풍·MBK 측은 이 과정에서 미 정부에 과도한 혜택이 제공됐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영풍·MBK 측은 법적 대응에 나서는 한편, 금융감독원에도 관련 사안을 제기하며 분쟁 수위를 끌어올리는 모습입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은 최근 금융감독원에 고려아연의 미 제련소 투자와 관련한 공시가 미흡하다며, 정정 공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민원을 접수했습니다. 아울러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대해서도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습니다. 영풍·MBK 측은 이번 투자 결정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이른바 ‘백기사’ 확보를 위한 조치라며, 미 정부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조건을 걸어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미 전쟁부(국방부)와 대출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현지 제련소 운영법인(크루시블 메탈스)이 전쟁부에 신주인수권(워런트)을 발행하고, 주당 1센트(약 14원)에 최대 14.5%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련소의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약 22조원)에 도달할 경우 추가로 20%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돼, 미국 측이 최대 34.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 크루시블 메탈스는 각종 인허가 지원을 받는 대가로, 미 정부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합작법인 크루시블 JV에 매년 최대 1억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함께 크루시블 JV는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19억4000만달러(약 2조85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 10.59%를 확보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 정부가 고려아연 경영에 참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영풍 측은 이러한 거래 구조가 충분히 공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영권 방어를 위해 미 정부 측에 과도한 혜택을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련소 운영법인 지분을 헐값에 넘기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와 연계된 유상증자 역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8월 고려아연과 미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게르마늄 공급·구매와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진=뉴시스)
반면 고려아연 측은 미국의 핵심광물 투자에서는 워런트 제공이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미 광물 기업 MP머티리얼스가 미 전쟁부에 최대 15% 수준의 지분 취득 옵션을 제공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가로 제시된 20% 지분 취득권 역시 기업가치가 150억달러에 도달했을 때 시장 가격으로 자금이 투입되는 것으로, 이 경우 회사에 약 4조4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돼 재무적으로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입니다.
연간 최대 1억달러(약 1470억원)에 달하는 수수료 역시 충분히 감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고려아연은 크루시블 메탈스가 본격 가동되는 2030년을 기준으로 매출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각각 5조6000억원, 1조2500억원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인허가 등 각종 행정 절차가 신속히 이뤄져 공장 가동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수익성도 그만큼 개선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유상증자와 관련해서도 고려아연은 이번 거래가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법령과 정관에 적합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영풍 측이 적대적 인수합병에만 매몰돼 기업의 중장기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로 인해 경영권 분쟁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이 미 정부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해석되는 반면, 영풍·MBK 측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측 지분은 고려아연 우호 지분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영풍·MBK 측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영풍·MBK 측이 미 정부의 투자 구조와 조건을 문제 삼아, 이를 역으로 활용할 여지도 있다”고 봤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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