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시행령이 입법예고되면서 완성차업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시행령대로라면 노조별 개별 교섭이 허용돼 현대차·기아 등 원청 기업들은 수천 곳의 하청업체 노조와 각각 교섭해야 할 가능성이 커져, 교섭·노무 리스크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현대자동차·기아 본사 전경. (사진=뉴시스)
고용노동부는 최근 교섭 단위 분리와 통합 결정 기준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개정안은 현행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는 유지하되, 절차 중에 ‘교섭 단위 분리’를 명시해 노조가 원청과의 공동 교섭을 원치 않을 경우 별도 교섭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현재는 하나의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 있는 경우 교섭대표 노조를 통해 사측과 협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 시행령은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교섭권 범위와 사용자 책임의 범위, 노동조건 등이 다를 경우 원칙적으로 교섭 단위를 분리하도록 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교섭 단위 분리 범위가 폭넓다는 점입니다. 기존 노동조합법은 교섭 단위 분리에 대해 현격한 노동조건의 차이, 고용 형태, 교섭 관행 등의 경우에만 노동위원회가 교섭 단위를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를 업무의 성질·내용, 작업 방식, 노동 강도 등으로 구체화해 31가지 경우의 수로 늘렸습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특히 하청업체가 수천 곳에 달하는 완성차업계에서 반발이 거셉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만 8500여곳에 달하는데, 하청 노조가 개별 교섭을 요구할 경우 원청은 사실상 수백·수천 건의 교섭을 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다수의 노조에서 개별 교섭을 요구해 오면 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을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시행령이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 등의 측면에선 의미가 있다면서도, 교섭 단위 분리의 폭을 넓힐 경우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직격탄을 맞아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합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자의 교섭권 확대와 원·하청 간 구조적 불균형 해소라는 취지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완성차업계처럼 글로벌 경쟁과 다층 협력망 속에서 운영되는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교섭 단위 분리 폭을 넓힌다면 교섭 리스크가 증가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교섭 창구가 다수화될 경우 비용·시간·관리 부담이 급증할 수 있어 동일 요구 사항에 대한 교섭 창구 통합, 교섭 일정 조율 가이드 라인 등과 같은 최소한의 조정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정안은 내년 1월5일까지 입법예고된 뒤, 3월에 시행될 예정입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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