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조 '생산적 금융' 쏟지만…정책금융 기술평가 역량 '미흡'
K-정책금융연구소, 13개 기관 정보공개청구 결과
기보·신보·기은·수은 기술기업 평가체계 보유
산은 '비공개', 8개 기관은 '정보부존재'
"정부 '기술 선도 성장' 강조에도 현장은 준비 부족"
2025-11-26 15:34:00 2025-11-26 15:34:00
[뉴스토마토 오승주·김지평 기자] 이재명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기술금융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향후 150조원이 미래 전략산업에 공급될 예정이지만, 정작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정책금융기관 대부분이 기술기업을 선별할 기본 평가체계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가 주요 정책금융기관 13곳(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한국무역보험공사·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벤처투자·한국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해양진흥공사·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을 대상으로 '기술기반 중소·벤처·스타트업 평가 및 지원 현황'을 점검한 결과, 기술평가 시스템을 갖춘 기관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수출입은행, 기업은행(024110) 등 4곳에 불과했습니다.
 
K-정책금융연구소는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단순 자금 공급을 넘어 유망 기술기업의 발굴과 육성에 있다고 보고 정책금융기관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수요자 관점에서 기관의 실질적 지원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진행했으며, 청구된 정보는 △기술기반 기업 평가 항목 및 지표 △지원 기준 △평가 체계 △관련 규정 △지원 실적 등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조사 결과, 체계적인 기술평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답한 곳은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이었습니다. 반면 무역보험공사·주택금융공사·HUG·중진공·한국벤처투자·캠코·해양진흥공사·KIND 등 8개 기관은 관련 평가 체계가 없거나 해당 사업을 수행하지 않는다며 '정보부존재'를 통보했습니다.
 
산업은행은 '비공개' 결정을 내렸습니다. 산은 관계자는 "기술기반 기업 지원 사업 중 공모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다"며 "각 영업점 상담을 통해 지원이 이뤄지지만 해당 정보를 일일이 취합해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기보, AI 평가모델 'K-TOP' 도입 
 
기술금융 전담 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은 가장 고도화된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보는 '기술평가운용요령'에 따라 평가 절차·지표·범위 등을 세분화한 내부 규정을 갖췄습니다. 특히 과거 기술평가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AI) 기반 기술평가모델인 'K-TOP'을 도입해 기술성 분석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기술평가시스템(KTRS)은 전체 31개 지표 중 정량지표 14개, 정성지표 17개 항목으로 구성해 객관성을 확보했습니다. 지원 대상은 신기술사업 중소기업 및 자산 5000억원 미만 기업이며, 투자는 사업성이 뛰어난 기술혁신 선도형 기업에 집중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기보는 지난해 기술기반 중·벤·스 13만6751건에 29조145억원을 지원했으며, 신규 지원 승인율은 89.2%를 기록했습니다. 보증연계투자도 지난해 92개 기업에 741억원이 집행됐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신용보증·투자·신용보험 등 3개 분야로 나눠 자료를 공개했습니다. 다만 세부 평가 항목과 배점 기준 등은 '경영·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투자 부문은 기술력이 우수한 비상장 중소기업이 대상이며, 법인 설립 5년 이내 창업기업에 전체 투자금의 50% 이상을 배정합니다. '상담→조사→사전검토→심사→결정→집행' 절차를 거쳐 신보는 지난해 기술기반 중·벤·스 78개 기업에 총 658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신용보험 부문은 이노비즈·벤처기업 등 혁신형 인증기업을 주 대상으로 하며, 지난해 이노비즈 기업에 9474억원, 벤처기업에 2조103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신용보증 부문에서는 기술기반 제조업 및 지식기반 서비스업을 지원하며, 지난해 기술기반 스타트업 9196개사에 총 3조5340억원의 보증을 공급했습니다.
 
김종호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이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브이스페이스 메인홀에서 개최된 기술평가 오픈플랫폼 'K-TOP 공동활용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기술보증기금)
 
기은·수은, 제한적 정보공개…수은법 개정으로 투자 확대 전망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기본적인 기술금융 지원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으나 정보 공개 범위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기업은행은 금융위원회의 '기술금융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술 연관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지원합니다. 기술신용평가기관의 기술평가서를 활용해 대출 심사를 진행하며, 지난해 8만1933개사에 기술금융 대출을 실행했습니다. 대출 잔액은 약 115조원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평가 항목은 내부관리 사항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했습니다.
 
수은은 기술신용평가 등급 T4(양호) 이상을 보유한 벤처기업 및 스타트업을 지원하며, 내규 적합성·채무상환능력·사업타당성 등을 종합 심사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기술기반 벤처·스타트업 지원 실적은 2건(8억원)에 그쳤습니다. 수은 측은 "주로 수출입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하고 있어 초기 단계인 벤처·스타트업 지원에는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곧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기업 투자 제약을 완화하는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진성준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통과했는데요. 개정안은 수은이 대출·보증 연계 없이도 법인에 직접 출자하거나 벤처투자조합 등 다양한 집합투자기구(PEF)에 적시 투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수은의 벤처기업 투자가 본격화돼 생산적 금융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재호 K-정책금융연구소 소장은 "이재명정부의 경제성장전략의 핵심 키워드는 기술 선도 성장이고, AI 등 10대 선도 산업과 90대 핵심 기술에 대해 투자한다고 지난 8월에 발표했다. 또한 대통령이 혁신 벤처·스타트업 중심이 되어 창업국가로 나아가자고 몇 차례 타운홀미팅에서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정책금융기관 대다수가 어디에 어떻게 기준을 맞혀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대통령과 기관의 엇박자는 감독 정부부처의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이라고 본다. 일의 방향과 속도가 맞아야 하는데 대통령은 죽어라고 외치고 정작 현장의 기관들은 눈만 꿈벅꿈벅하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국민성장펀드 조성과 기술금융 강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오승주·김지평 기자 jp@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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