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금산분리 완화…‘신중론’에 무게
주병기 “근간 훼손 안돼”…원칙적 고수
재계, 금산분리 제도 대대적 완화 요구
팽팽한 ‘찬반’ 의견…고개 드는 ’신중론’
2025-11-25 11:32:23 2025-11-25 14:53:49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인공지능(AI) 대전환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맞물려 대규모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방안으로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요구가 부상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주병기 위원장이 이에 대한 원칙적 고수 의견을 분명히 하면서, 이재명정부의 긍정적 검토 기류가 변화할 것인 관심이 쏠립니다. 재계에서는 AI와 반도체 등 첨단산업쩐의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투자자금력확보 차원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거듭 요구하고 있는 반면, 학계에서는 수십 년간 지켜져온 대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로신중론에 무게가 실립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5일 주 위원장은 최근 산업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금산분리 완화 이슈와 관련해 근간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습니다. 주 위원장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국에서는 총수 일가가 서로 관계없는 업종에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지배하고 세습하는 아주 비정상적인 선진국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금산분리 원칙을 통해서 금융기관의 사금고화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장 문제를 더 심화시키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금산분리 제도의 주무부처인 공정위의 수장인 주 위원장은 앞서도 신중론을 견지한 바 있는데 이를 재차 강조한 셈입니다.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첨단산업 투자 촉진을 위해 필요하면 금산분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최후의 수단이라며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검토하는 정부와는 다소 결이 다른 입장으로 향후 정책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립니다
 
금산분리, ‘낡은 규제’ vs ‘마지막 보루
 
금산분리 원칙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재벌 그룹의 금융사 소유를 금지해, 고객의 예금을 총수 일가의사금고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등 기업이 금융 자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기업의 리스크를 금융으로 전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또한 금융 기업이 고객 예금 등으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사(수신·여신) 보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금산분리의 주요 내용이지만 지주회사의 벤처투자 규제, 지주회사의 비계열사 지분 보유 제한, 지주회사의 계열사 지분 일정 수준 이상 보유 의무화 등의 규제도 경제력 집중 억제 등 넓은 의미에서 포함됩니다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샘 올트먼(왼쪽에서 세번째) 오픈AI CEO를 접견하고 있다. 이날 자리에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이뤄졌다. (사진=뉴시스)
 
1982년 처음 도입된 금산분리는 강화와 완화를 되풀이해왔는데, 40여년이 지난 현재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라는 주장과재벌 기업들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대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AI 산업에 한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조건으로 투자 활성화를 위한 금산분리 등 규제의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부 부처가 개선 방안을 고심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재계, 대대적금산분리 완화요구
 
재계에서는 금산분리 정책의 대대적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등 재계의 측면 지원의 공이 컸던 상황에서 정부가 반대급부로 규제 개선카드를 꺼내 들자 오랜 숙원이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적극 요청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재계는 AI 등 첨단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에 투자 병목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구체적으로 지주회사의 전략산업펀드 조성을 위한 펀드운용사(GP) 소유 허용,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외부출자·해외투자 한도 상향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 금지등 금산분리의 근원적 정책과 관련해서는 역차별로 경쟁력 저하, 소비자 이익 감소 우려 등을 이유로 단기적으로 여신금융사(카드사·캐피탈 등)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장기적으로는 금융사 보유 금지 규정을 아예 폐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알파벳의 구글벤처스(투자업), 구글캐피탈(금융업)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금산분리 완화가 본격화할 경우 재벌 그룹의 부실 계열사 지원이나 비주력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 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승계 자금 마련, 공격적인 투자와 부실 지원 등이 겹치는 등 폐해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입니다. 더욱이 대기업 집단이 금융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활용해 서비스 우위를 극대화함으로써 독과점이 심화하고 공정 경쟁이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할 공산도 큽니다
 
서울 도심에 입주한 기업의 모습. (사진=뉴시스)
 
팽팽한 찬반 의견…‘신중론에 무게
 
학계에서도 AI 투자와 관련한 금산분리 완화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주 위원장의 입장 처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립니다자금 조달 수단을 놓고 민관 공동 투자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 합작회사(JV)를 통한 국민성장펀드 출자 등 다양한 방법론이 남아 있는 만큼 산업구조 폐해를 막기 위한 최후의 안전 조치인 금산분리 완화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금산분리는 산업구조에 관련된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원칙이라며이런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해결 방법은 없는지 등을 철저히 점검하고 그럼에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후 이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AI 투자자금 조달 등 거론되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요구의 배경은 이러한 사전 전제가 확인되지 않았기에 완화를 섣불리 검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AI 시대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개선이 필연적이라고 할지라도 폐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강화된 대책 마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대기업집단이 급변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혁신적인 사업을 과감히 펼칠 수 있도록 국가가금산분리 완화라는 강력한 날개를 달아준다면, 기업 또한 그 자유의 무게만큼이나 막중한책임의 닻을 내려야 한다혁신을 위해 자본의 빗장을 푸는 대가로 고도화된 내부통제 시스템 구축과 투명한 감독 수용이라는 안전장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옥죄는 규제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며 기업이 누릴 파격적인 자율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필수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현재의 시스템은 대규모 금융사고를 사후적으로 적발하는 데는 강하지만 AI 시대 복잡하고 빠른 리스크 전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은 취약하다제도 개선의 방향은 사전 예방 및 책임 명확화가 돼야 하고 책임 경영 도입을 통한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 기술 기반 감시 및 통합 규제를 통한 감독 시스템이 병행돼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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