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북극항로를 개발해 부산을 세계 3대 항로 환승역으로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이재명정부의 핵심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에 속도가 붙는 가운데, 민관 협력 체계도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해수부는 해운업계와 함께 내년부터 시범 운항을 추진할 계획이며, 전략 수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과 약 5500억원 규모의 예산 편성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선 상태입니다.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북극항로의 높은 사업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쇄빙선·내빙선 비용 부담을 비롯해 물동량 부족, 인프라 미비, 러시아 리스크 등 구조적 한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 장관은 지난 13일 오마이TV 인터뷰에서 “북극항로가 열리면 미주·유럽·북극을 잇는 3대 항로가 모두 부산 앞바다를 지나, 부산항이 글로벌 항로가 교차하는 핵심 거점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국내 해운·조선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만큼, 부산을 중심으로 관련 기관을 집적해 시너지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 장관은 이어 연내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해사전문법원·동남투자공사 설립과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의 집적화를 병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HMM, SK해운, H라인해운 등 주요 해운 기업까지 부산에 집적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뒤처진 해운·해사 경쟁력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습니다.
북극항로 강점은 ‘운항 거리 단축’
이처럼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높은 사업성이 자리합니다. 특히 운항 거리와 기간이 크게 단축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기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면 약 2만2000km, 40일가량이 걸리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만5000km로 줄어 약 30일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연료비·인건비·운영비 등 전반적인 운항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북극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 경로지만, 그동안 빙하로 활용이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이용 가능 기간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중 대부분 빙하로 덮여 접근성이 낮았지만, 1979년부터 2021년까지 북극의 해빙 속도는 지구 평균보다 약 4배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에 지난해 북극 해빙의 최대 범위는 위성 관측 47년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정지훈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 사무총장은 “현재는 여름철 약 3개월간 소정의 자격을 갖춘 선박(대빙 선박 또는 극지선박증서를 갖춘 일반 선박)의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대 후반부터는 일반 선박도 하계 5개월 이상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북극항로 선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최근 북극항로에서 운항 경험을 꾸준히 축적하며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5000TEU급 컨테이너선 ‘이스탄불 브리지호’는 북극항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업 운항에 성공했습니다. 이 선박은 북극항로를 이용해 영국 팰릭스토우항까지 20일 만에 도착하며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운항 시간을 절반가량 단축했습니다. 당시 늦여름 항해로 해빙이 거의 없어 쇄빙선 지원 없이 운항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성엽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물류 루트를 확보할 때는 초반에 트랙레코드를 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북극지역에서는 통항 경험 자체가 경쟁력이기 때문에 뒤늦게 진입하면 중국이 쌓아놓은 장벽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북극항로 활성화로 쇄빙선·내빙선 수요가 늘어나면, 압도적 경쟁력을 가진 국내 조선업이 건조와 유지보수(MRO) 부문에서 수혜를 볼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부산이 세계 2위 환적항인 만큼 거점 항만으로서의 혜택도 예상됩니다.
우려도 공존…사업성 연구 발표 예정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입니다. 북극항로는 항로 단축으로 운항비를 절감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빙하 구간에서는 쇄빙선의 에스코트가 필요한 데다, 본선인 내빙선은 동파 방지를 위해 일반 선박보다 약 30%가량 건조비가 더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정 자격을 갖춘 선원 확보와 높은 보험료도 부담입니다. 2011년 한철환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교수가 실시한 북극항로 경제성 연구는, 이 같은 비용을 감안할 경우 수에즈 운하 대비 전체 비용이 약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북극해를 항해 중인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사진=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익성 측면에서도 고민거리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물동량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북유럽 노선의 경우 여전히 수에즈 운하를 경유하는 것이 더 빠르다”며 “그렇다면 북극항로 수요는 동북아(한·중·일) 국가에 한정되는데 이들 국가는 해당 노선의 물동량 자체가 적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수심이 얕아 선박 크기가 최대 5000TEU로 제한되기 때문에, 한 번의 운항으로 충분한 이익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러시아 리스크도 겹칩니다. 북극항로의 기항지 인프라는 거의 전무하며, 해도조차 러시아 측에서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러시아를 통과할 때 발생하는 통항료뿐 아니라 지정학적 불안정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러시아 해운 시장의 약 78%를 차지하던 외국 선박이 빠져나가면서 안정성을 중시하는 해운업계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단계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사업성이 낮을 수 있지만, 추가 비용을 감수할 만한 긴급한 특수 화물을 운송하면 수익성을 맞출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향후 사업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물동량을 발굴해야 하며, 북극 자원을 운반하는 LNG 등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북극항로 사업성 평가 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사업성 연구는 연내 또는 내년 초 완료될 예정이며, 주요 쟁점도 함께 다룰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해운업의 미래를 내다보는 의미 있는 투자”라며 “협회도 50억원 기금과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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