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새 언어 배우면 뇌가 젊어진다"
27개국 8만6천여명 대상 연구 결과
다언어 학습, 뇌 건강 위한 공공투자
2025-11-14 09:49:26 2025-11-14 14:18:16
캐나다 총리를 지낸 장 크레티앙은 그의 자서전 『위대한 캐나다를 꿈꾸며』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라는 두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하나의 언어를 더 배우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만족과 더불어 ‘지적인 희열(intellectual gratification)’을 가져다준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는 게 많은 사람의 경험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이 뇌의 젋음을 지키는 비결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요르단 대사관이 주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요르단 현지 참가자들이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이 뇌의 젋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새 언어를 배우는 일은 단지 소통의 기술이 아니라, 뇌의 젊음을 지키는 전략이다.” 칠레 아돌포 이바녜스대학교(Universidad Adolfo Ibañez)의 신경과학자 아구스틴 이바녜스(Agustín Ibáñez)는 이번 연구 결과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11월10일 실린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뇌의 생물학적 노화 속도가 절반 수준으로 늦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 27개국 51세에서 90세까지 성인 8만 6천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대규모 연구는 “언어 능력이 인지 노화(cognitive aging)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인지 예비력’ 높이는 다국어 구사 능력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바이오행동 연령 차이(biobehavioural age gap)’를 계산했습니다. 이는 실제 나이(chronological age)와 신체·생활습관·사회경제적 요인을 기반으로 예측된 생리적 나이(predicted age) 간의 차이를 말합니다. 이 격차가 클수록 생물학적 노화가 빠르다는 뜻입니다. 분석 결과 한 가지 언어만 쓰는 사람은 두 개 이상 언어를 쓰는 사람보다 생물학적 노화 위험이 약 2배 높았습니다. 익힌 언어의 수가 많을수록 이 효과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바녜스 교수는 “하나의 언어를 더 배우는 것만으로도 노화가 늦춰진다. 두세 개 언어를 구사할 경우 그 효과는 훨씬 강했다”고 말합니다. 
 
영국 레딩대의 인지신경과학자 크리스토스 플리아치카스(Christos Pliatsikas) 교수는 네이처 뉴스(Nature News)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다언어 사용이 뇌 노화에 미치는 영향은 논쟁적이었지만, 이번 연구는 그 논쟁을 끝낼 만한 규모와 정밀도를 갖췄다”라며 “해당 분야에 획기적 변화가 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언어 하나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그 외국어를 말한다’는 차원을 넘어, 기억력·주의력·문제 해결력 등 고차원 인지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 유지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언어 활동은 뇌의 회로를 재조직(rewiring)하며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을 높여주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언어를 쓰는 것은 단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한테서 나타나는 부수 효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뇌의 전전두엽과 해마를 활성화하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뇌 건강 유지 비결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오번대의 인지심리학자 수전 투브너-로드(Susan Teubner-Rhodes)는 “이 연구가 사람들이 제2언어를 배우거나 계속 사용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행위는 뇌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새 언어를 학습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언어를 꾸준히 쓰면,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해마(hippocampus)가 동시에 활성화하는데, 이는 치매 예방 효과를 내는 ‘인지적 운동’과 같습니다. 
 
전전두엽·해마 활성화, 치매 예방까지
 
이 연구는 지리적으로 매우 다양한 대규모 표본을 사용했습니다. 또 이번 연구의 특징은 다국어 사용과 노화 사이의 인과성을 교란할 수 있는 요인들, 예컨대 이민 여부, 교육 수준, 소득, 심혈관 건강 등을 철저히 통제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다국어 사용이 단지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부수 효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뇌 건강을 지키는 보호 요인임이 확인됐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언어 학습을 단지 직업 능력이나 문화 교류의 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평생 뇌 건강을 위한 공공 투자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가진 교육 및 보건 정책의 함의를 강조합니다. 
 
‘지적인 희열’이 아니라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는 것은 뇌 건강을 위한 좋은 대안이라는 연구는 우리에게 도전을 권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단어나 문법을 익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문화의 구조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고의 틀을 받아들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뇌는 더 넓은 신경망을 구축하고,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게 됩니다. “언어는 기억의 지도”라는 말이 있지만, 언어를 늘리는 것은 곧 뇌의 지도 위에 새로운 길을 여는 일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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