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이 남긴 흔적들)③유상증자로 경영권 넘어간 진원생명과학
260억원 유상증자 불발…경영권 분쟁 점화
KH그룹 계열사 전직 대표이사 경영진 합류
2025-09-22 15:24:07 2025-09-22 15:57:33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코스피 상장사 진원생명과학(011000)의 경영진이 교체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진원생명과학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26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계약 상대방이 대금을 납입하지 않아 소송 끝에 경영권을 내줬습니다. 새로 취임한 대표이사 중 한 명은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분류되는 배상윤 KH그룹 회장과도 밀접한 관계를 보입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진원생명과학은 지난달 1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 선임 안건 등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임시 주총 결과 진원생명과학이 제안한 사내이사 박영근·조병문 선임의 건은 보통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습니다. 반면 주주 측이 제안한 사내이사 고광연·한우근 선임의 건은 가결됐습니다. 임시 주총 결과에 따라 박영근 전 대표는 신설되는 부서인 라이프사이언스 사장과 자회사 VGXI 최고경영자(CEO)로 회사에 남게 됐고, 진원생명과학 대표는 고광연·한우근 2인으로 변경됐습니다. 
 
진원생명과학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타오른 건 약 4개월 전입니다. 진원생명과학은 지난 4월30일 26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운영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유상증자는 한 달 뒤인 5월29일 무산됐습니다. 계약 상대방인 동반성장투자조합 제1호가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지 않았고, 진원생명과학이 유상증자 철회를 공시한 겁니다. 
 
진원생명과학의 유상증자 철회는 6월4일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예고로 이어졌고, 결국 6월30일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됐습니다. 같은 달 16일에는 고광연·한우근 등 2인의 원고가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진원생명과학을 상대로 임시주총 소집허가 가처분 신청, 일시이사 및 일시대표이사 선임 신청 등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법적 분쟁을 시도했습니다. 
 
 
 
소송 당사자 중 한 명인 고광연 현 진원생명과학 대표는 유상증자 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동반성장투자조합 제1호 대표자입니다. 한우근 대표는 또 다른 코스피 상장사 대호에이엘(069460)에서 경영총괄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호에이엘은 지난 4월 50억원을 들여 동반성장투자조합 제1호 주식 50만주를 취득한 곳입니다. 진원생명과학 유상증자 결정이 나올 때쯤 고광연 대표와 한우근 대표가 이미 서로 연결된 셈입니다. 
 
한우근 대표의 이전 직함은 KH필룩스 대표이사입니다. 한우근 대표는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KH필룩스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조명 회사 KH필룩스는 배상윤 회장이 이끄는 KH그룹의 계열사로 현재 거래 중지 상태입니다. 지난 2016년 KH그룹에 편입된 KH필룩스는 배상윤 회장의 강원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계열사입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함께 1세대 기업사냥꾼으로 꼽히는 배상윤 회장은 2018년과 2019년 KH미래물산과 장원테크(174880)를 각각 사들인 뒤 2021년에는 또 다른 계열사 KH강원개발을 통해 알펜시아리조트까지 품었습니다. KH필룩스는 KH강원개발에 300억원을 대여했습니다. 이 돈은 알펜시아리조트 입찰 보증금으로 쓰였습니다. 
 
배상윤 회장이 연이어 기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힘은 전환사채(CB) 발행이었습니다. 전환사채는 특정 시점이 지난 뒤 주식으로 바꿔줄 수 있어 비교적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자 할 때 주로 활용됩니다. 배상윤 회장은 기업을 인수한 뒤 전환사채를 발행해 인수 자금을 모으고, 또 다른 회사를 품으면서 덩치를 키웠습니다. 
 
전환사채를 무기 삼아 세를 키운 배상윤 회장은 알펜시아리조트 인수 과정에서 KH필룩스에 4000억원대 손해를 끼치고 회삿돈 600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지난 2023년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습니다. 배상윤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이 알펜시아리조트 입찰 비리를 들여다보자 캄보디아로 도피했고, 현재 인터폴 적색수배 상태입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에도 연루된 배상윤 회장은 당초 지난달께 귀국해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으나 아직도 해외에 머물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KH그룹은 KH필룩스 공시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에서 배 회장의 횡령·배임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관련 기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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