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 기자] 미국이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을 체포한 여파가 연일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주말 내내 총력 대응에 나섰는데요. 외교가 안팎에선 미국발 '비자 리스크'는 이미 예고된 문제였다는 지적이 지배적입니다. 그간 미국의 관행을 사실상 방치해온 결과라는 건데요. 이번 사태로 한·미 동맹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를 전망입니다. 재발 방지 약속과 사태 해결만이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재확인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손 놓고 있던 정부…이미 수차례 '경고음'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은 4일(현지시간) 우리 국민 300여명과 노동자 등 총 475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공사 완료 시기 역시 내년 하반기로 미뤄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 공장 건설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미국 비자 발급 문제는 수차례 '경고음'이 울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그동안 미국발 비자 리스크에 대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동안 미국 제조업 관련 대규모 투자 규모는 날로 늘었습니다. 한국인 기술자 파견 인력도 늘어난 만큼 비자 수요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미국의 비자 발급 비자 지연과 거부 사태 문제는 꾸준히 거론돼왔습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하기 위해선 전문직을 위한 취업 비자인 'H-1B' 비자 또는 'L1·E2'(주재원 비자)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H-1B 비자는 연간 8만5000명만 발급 가능한데, 추첨제로 결정됩니다. 2025년 3월(신청 기간) 약 48만명이나 해당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한국 국민은 보통 2000명 내외가 비자 승인받습니다. L1·E2 비자 역시 원청기업과 직접적인 고용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발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에 체포된 우리 국민 대부분은 ESTA(전자여행 허가 비자)와 B1(단기 상용 비자) 발급받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H-1B 비자 발급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해당 비자를 발급 받아온 겁니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홈페이지를 통해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사진=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뉴시스)
대통령실 "편치 않은 감정 고려"
업계에선 한국을 위한 맞춤형 비자 쿼터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부 차원에서 E-4(한국인 전용)비자 신설 등을 미국 측에 적극 요구해야 한단 건데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인 캐나다·멕시코(무제한), 싱가포르 5400명, 칠레 1400명이 연간 발급받을 수 있는 H-1B 전용 쿼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호주는 'E3' 특별 비자로 연간 1만500개의 비자를 신규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인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 노력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앞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E-4(전문 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 특별 비자 신설 법안(동반자법)이 2013년부터 추진된 바 있습니다. 연간 1만5000개에 달하는 한국인 특별 비자를 할당하는 게 골자입니다. 하지만 미국 의회 반대로 12년간 입법이 무산됐습니다.
결국 미국과 직접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만이 한국과 미국의 동맹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미국 측에 3500억달러(한화 약 700조원) 투자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예정인 만큼 이번 기회에 별도 비자 쿼터 등을 확보해야 한단 겁니다.
정치권과 기업은 뒤늦게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습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만나 정책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긴급현안질의에서도 구금 사태에 대한 질타가 잇따랐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동자한테 앞으로 미국 출입 관련해서 추가적인 불이익이 없도록 합의됐냐'는 질의에 "(미국과) 대강 합의가 이뤄졌다"고 답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도 E-4 비자 또는 쿼터제 보유 등에 대해 적극 추진할 방침인데요. 조 장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E-4 (비자)나 쿼터 또는 이 두 개를 다 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협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 장관은 이날 외통위 현안 질의 참석 이후 미국으로 방미길에 올랐습니다. 미국 측과 관련 사안 막바지 협의를 위해서입니다. 앞서 우리 국민이 자진 출국하는 형식으로 귀국하는 방향으로 한국과 미국 간 조율이 이뤄졌는데요. 이르면 오는 10일(현지시간)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대통령실은 해당 문제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며 합리적인 새로운 비자까지도 논의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브리핑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조지아주 구금 사태 관련) 다양한 부분, 불편한 불안함, 불만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며 "한·미 동맹 간 편치 않은 감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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