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하이닉스 ‘날벼락’…K반도체 ‘최대 위기’
트럼프 “반도체 ‘대략’ 100% 관세”
현지 생산 요구…‘HBM 공장 없는데’
정부 “최혜국 대우 맞아”…15% 전망
2025-08-07 15:03:07 2025-08-07 15:21:18
[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반도체에 ‘대략’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 최대 위기가 들이닥쳤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두 기둥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반도체가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따라 한국 경제가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혜국 대우 약속에는 변함이 없다며 우려 달래기에 나선 가운데, 일각에서는 실제 100% 부과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9(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 대략 100% 관세 부과”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애플의 대미 투자 계획 발표 행사에서 “(미국이 아닌 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집적회로와 반도체에 대략(Approximately)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공표되지 않았으나,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관세 부과 시기를 “다음 주 정도”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고율 관세 예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부터 요구한 ‘미국 투자 유치’를 겨냥한 발언으로 ‘대략’이라고 단서를 단 것도 여지를 둔 표현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거나 생산을 약속한 기업은 고용·생산 규모에 관계없이 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관세 폭탄을 피하려면, 미국에 직접 투자하라는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여지를 뒀다고는 하지만 100%라는 가공할 세율이 거론되면서 당장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번 협상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던 만큼 상호관세에 품목별 관세를 더해도 25% 정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100% 초고율 관세가 반영되면 가격이 지나치게 오를 텐데, 우리나라 수출에 타격이 상당히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커 100% 관세가 부과될 경우 여파도 클 전망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1419억달러(약 196조4600억원)로 전체 수출액 6838억달러(약 946조7200억원)의 20.8%를 차지했고, 대미 수출액만 보면 106억8000만달러(약 14조8000억원)로 전체 수출 품목 3위 수준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 (사진=연합뉴스)
 
수출 타격 우려…업계 입지도 위기
 
반도체 업계는 혼란스러움에 휩싸였습니다. 대미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위기에 직면한 모습입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텍사스주에 오스틴 공장을 가동 중이고, 테일러시에 신규 펩을 건설 중입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에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한 상황에서 추가 투자에 대한 심한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악의 경우 100% 관세가 부과된다고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국내에서 전량 생산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스틴·테일러 공장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설이고, SK하이닉스가 준비하는 인디애나 공장도 후공정 패키징 시설인 탓에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내 공장에서 HBM 생산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난해 5월,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주에 HBM 생산공장을 짓는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SK하이닉스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장기적으로 HBM 분야에서 양사의 독보적인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HBM 제조사는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정도입니다. 세 곳 모두 HBM은 미국 현지에는 생산기지가 드물거나 없는 만큼, 당장은 동등한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이크론은 2026년을 목표로 미국 아이다호주에 HBM 등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신축 공장을 짓고 있어 100% 관세가 부과될 경우, 2026년 이후에는 국내 기업을 가격경쟁력에서 앞지를 수 있습니다. 
 
업계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 만큼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관세 발표가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만 나온 상황이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내부적으로 살펴보는 중일 것”이라며 “품목별 관세라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의 품목 관세 등, 어떻게 될지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아직 속단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강유정 대변인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태로운 최혜국 대우…일부 낙관론도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가 장담한 ‘최혜국 대우’ 약속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줄이는 데 합의하면서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최혜국 대우를 받았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당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브리핑에서 “추후에 반도체나 의약품에 품목 관세가 있더라도, 다른 합의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같은 수준의 최혜국 대우를 받는 것으로 적시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 전반의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곧장 진화에 나섰습니다. 이날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100%든, 200%든 어떤 나라가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 반도체나 의약품 분야에 있어 최혜국 대우 약속을 받았다’는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이날 오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100% 관세 맞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 여 본부장의 발언을 옹호한 것입니다. 
 
정부의 입장은 앞서 미국과 협상한 유럽연합(EU)의 관세율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됩니다. 앞서 EU는 미국과 반도체와 자동차, 의약품 등에 대해서 단일 15% 적용을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EU와 한국 모두 가장 낮은 세율인 15%를 부과받은 만큼, 다른 나라에 100% 관세가 부과된다 해도 한국은 EU와 같은 15% 관세를 부담한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 수요가 높아진 만큼 실제 관세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습니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미국 기업들이 AI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핵심 부품에 대한 100% 관세를 물릴 것 같지는 않다”며 “직접 발언한 것처럼 투자 유치 정도의 의도로 풀이되고, 현실적으로 100%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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