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중국 공장에 미국산, 혹은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장비의 반입을 막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두 기업 모두 중국에 공장을 가동 중인 상태로 장비 수출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미 바이든 정부 시절부터 시행된 대중국 제재로 기업들이 대응 마련에 나서고 있는 만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삼성전자의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상무부 고위 관계자가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허가받지 않아도 되는 조치를 취소한다는 내용을 업체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의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 상무부 수출 통제 부문 책임자인 제프리 케슬러 차관이 이번 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에 중국 공장으로 들어가는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에 적용된 ‘검증된 최종 사용자(Validated End User, VEU) 포괄면허’를 철회할 것임을 구두 통보했다”고 지난 20일(현지시각) 보도한 바 있습니다.
VEU란 중국을 억제하면서도 동맹국 기업이 받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규정으로,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일부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하면서도 동맹국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는 그 적용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VEU 철회는 중국으로의 장비 반입을 ‘전면 금지’는 하지 않으면서도 반입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VEU가 철회된 기업 공장들은 미국산 반도체 장비가 반입될 때 일일이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반입 제품을 선별함으로써 중국의 고성능 반도체 생산은 막을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미국의 조치로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충칭에 패키징, 다롄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두고 있습니다. 장비 불량이나 신기술 도입으로 장비 교체가 필요해질 경우,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장비 반입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전체 D램의 40%를 생산하고 있어, 생산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그 여파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D램 팹. (사진=SK하이닉스)
문제는 제재 범위가 불투명해 대안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장비에 대한 규제가 이뤄질지 알아야 대응할 수 있는데, 확정된 게 없기 때문입니다. 유봉영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규제 리스트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 교수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 기업이 극복할 수 있는 레벨인지 본 후에 기업이 대응하든 국가가 지원하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이번 조치가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 이미 대중 반도체 장비에 대한 규제가 시작됐기 때문에 이미 기업들이 관련 대응을 해온 만큼,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22년 규제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기업 내부에서 대중 수출 규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에 대한 대책도 세워놨다”며 “중국에 투자를 더 이상 늘릴 수 없다는 판단부터 첨단제품 생산은 전략적으로 국내로 돌리는 등 대응 방안들이 모두 논의된 바 있어 크게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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