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검사 출신이자 '윤석열 사단 막내'로 불리는 그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사안에 의견을 개진하고,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놓고 반대에 나서는 등 이상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선 정계진출을 위한 홀로서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탄핵 선고 결과에 따라 이 원장의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는 만큼 그의 감독 아래 놓인 금융권은 숨죽여 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금융권 밖으로 전선 넓혀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대대적인 정기검사를 받고 징계 조치를 기다리는 금융사뿐만 아니라 올해 검사가 예고된 금융사들은 금감원장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 원장은 윤석열씨와 여당과 각을 세우며 미묘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탄핵 찬성에 대한 의견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등 정치색이 강해진 반면 금융권 압박 강도는 미묘하게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금감원 출신 한 인사는 "계엄사태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이 원장이 이렇게 태세 전환을 했을까 싶다"며 "검사 출신으로 능력을 발휘해 지난해까지도 금융권을 압박해왔는데, 올 들어서는 출구전략을 세우는 모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원장은 현 정권 출범 이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연임 등 지배구조와 대출금리 등 가격 정책에 강하게 개입해왔습니다.
KB금융(105560)과
신한지주(055550),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했습니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에 휘말려 곤욕을 치루고 있습니다.
다만 또 다른 인사는 "경영진에 무리하게 중징계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추후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고 M&A까지 무산시킬 경우 주주 등으로부터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며 "금감원으로서는 극한의 사태는 피해야 하기 때문에 수습 국면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홈플러스·MBK 파트너스 및 삼부토건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표적으로 이 원장의 기류 변화는 우리금융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우리금융에서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가 발생한 뒤 지난 2월 중간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이 원장은 현 경영진에 대한 불신임과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현 경영진이 퇴진하지 않는 한 악연은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이 원장은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사석에서 밝혀 왔다"고 말했습니다. 임 회장이 물러나면 지배구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적발된 800억원대 기업은행 부당대출 사고에서도 이 원장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우리은행의 부당대출 규모가 730억원인 것에 비하면 기업은행 건도 사안이 가볍지 않습니다. 금감원은 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이 연루된 만큼 강력 조치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경영진 징계가 가능한 책무구조도의 소급 적용은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금감원, 출구전략 모색 중
올 들어 이 원장은 금융권 이슈 외에 다양한 방면으로 대응 전선을 넓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가 하면 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히며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입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상장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이 법안은 일반 주주 등의 권리를 강화하는 반면 기업 경영진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지만, 이 원장이 공개적으로 거부권 행사에 반대의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 원장은 금융 현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라도 막아야 할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공개 토론을 제안하기도 해 금감원 내부에서도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습니다.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상법 개정에 대한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직을 건다거나 경제인들에게 담판을 제안하는 것은 너무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최종 결정권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 원오브뎀(One of them)인데, 금감원에만 의견을 내라 마라 하는 것이 월권 아닌가"라고 받아쳤습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윤석열 탄핵 정국 속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원장이 스스로 '레임덕'을 막기 위해 여러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임기가 석 달 가량 남은 상황에서 해외출장, 지방순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며 "정파를 따지지 않고 의견을 밝힌다는 뜻으로 봐달라"고 말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윤석열씨 탄핵이 인용 또는 기각될 경우 금감원의 기조 변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탄핵 인용이 되고 조기 대선 국면으로 가면 이 원장의 정치색은 더 진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이 되더라도 탄핵에 찬성해온 이 원장이 직을 유지하기는 어려워보이는데, 금융권이 반사이익을 볼지 아닌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우리금융 경영평가등급과 홈플러스 사태, 상법 개정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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