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국경 없는 그곳에선 자유롭기를"
산업재해 당한 미등록 이주아동 출신 강태완씨
사망 후 한 달만에 유족·시민사회 등 추모제 진행
추모객 "차별이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2024-12-16 15:51:50 2024-12-16 15:51:50
[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윤석열씨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 <뉴스토마토>는 비상시국 내내 마음에 밟혔던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 20여년 동안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다 안정적 체류자격을 얻은 지 불과 4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숨진 몽골 청년 강태완(32)씨 빈소와 추모제입니다. 
 
15일 오후 7시 경기도 군포시 원광대학교 산본병원 장례식장에는 미등록 이주 아동 출신 강태완씨의 빈소가 꾸려졌다. (사진=뉴스토마토)
 
강씨는 지난달 8일 전라북도 김제시 지평선산업단지에 위치한 특장차 생산업체 HR E&I에서 근무하던 도중 10t짜리 무인 건설장비와 굴착기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그는 6살이던 지난 1998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몽골을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 신분이라 수능 준비조차 할 수 없었던 무력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보호막이었던 학생신분이 사라지자 강제출국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기도 했습니다. 태완씨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2021년 7월 법무부 자진출국 정책에 따라 몽골로 출국했다가 2022년 3월 단기체류 비자를 얻어 한국에 재입국했습니다. 이후 국내 한 전문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아 유학 체류자격(D-2)을 받았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태완씨는 지난 3월 HR E&I에 연구원으로 취직했습니다. 군포에 살던 그가 김제의 회사에 취업한 이유는, 인구소멸 지역에서 5년만 일하면 지역특화형 비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완씨 지난 6월 거주 체류자격(F-2)까지 받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얻은 지 4개월 만에 산업재해로 숨졌습니다.
 
강태완씨의 빈소 한 켠. 어릴 적 사진과 장학 증서·상장·학위증·대학입학자기소개서·생활기록부 등이 놓여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태완씨의 빈소는 경기도 군포시 원광대학교 산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습니다. 빈소 한편에선 추모제에도 열렸습니다. 빈소엔 자리가 마땅치 않아 대부분이 서 있어야 할 정도로 북적였습니다. 고인의 유족·직장동료·친구뿐 아니라 권영국 정의당 대표 등 시민사회·정계 인사들도 참석했습니다. 
 
추모제에선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연장을 위한 영상에 출연한 고인의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습니다. 태완씨의 어릴 적 사진, 장학 증서·상장·학위증·대학입학자기소개서·생활기록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함께 놓인 전태일평전과 HR E&I 근무복도 눈에 띄었습니다.
 
강태완씨가 입었던 HR E&I 근무복. (사진=뉴스토마토)
 
추모객들은 포스트잇으로 고인에게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벽면엔 이미 빼곡한 글씨의 포스트잇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포스트잇을 붙일 공간이 부족해 빈 노트에 추모 문구를 적인 이들도 많았습니다.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는,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될 때까지 잊지 않을게."
"국경 없는 좋은 곳에서 자유롭기를, 행복하기를 바라."
"우리가 열심히 싸울 테니 편히 쉬어요."
 
추모객들은 노트와 포스트잇에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뉴스토마토)
 
태완씨의 직장동료였던 강상현씨는 고인을 "성실함이 깔려있는 사람,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 사람,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웃고 꿈이 원대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그는 "태완이는 생전 회사 연구원으로 채용됐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25년을 숨어 지내는 등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열심히 살아서 외국인 등록증도 받았다. 그런데 꿈을 펼치지 못하고 요절해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열심히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가혹하다.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을 논하지만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쫓아내려 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태완이는 이런 제도적인 불합리 속에서 자기가 해볼 수 있는 걸 하면서 자리를 찾아왔다. 본국으로 출국하라면 했고, 대학에 가라면 갔고, 지방에서 체류하라면 했다. 나라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그 끝은 죽음이었다. 그가 남긴 숙제가 많다"라고도 했습니다.
 
홍혜인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는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태완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고향인 군포가 아니라 김제에 간 것도 체류 자격을 따기 위해서였다. 외국인들을 저렴한 노동력으로 보는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유족과 시민사회 관계자 등이 돌아가면서 발언했다. (사진=뉴스토마토)
 
태완씨의 어머니 이은혜(62)씨는 "시민사회에서 도와줘서 고맙다. 내일이면 아들을 보낼 것이다. 한 달 넘게 차가운 곳에 가둬놔서 힘들었다. 사과도 받았으니 편히 보내주고 싶지만… 보내기 싫다.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라며 오열했습니다. 이어 추모객들에겐 "아들을 따듯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군포시 국회의원인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미등록 이주아동까지도 공동체로 안 받아들이는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며 "저출생·노동력 부족 현실과 모순된다. 국회에서도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한편,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조건부로 체류자격을 주는 법무부 구제대책은 내년 3월 종료됩니다. 이에 이주와인권연구소 등은 16일부터 제도 연장을 위한 캠페인에 돌입합니다.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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