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의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되다니요. 그것도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두며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꺾고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언론과 여론은 ‘초박빙’의 승부를 예측했습니다. 출구조사에서 트럼프가 해리스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 보니 트럼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여론조사와 선거결과가 다른 이유는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그 사실을 숨기는 ‘샤이 트럼프’(Shy Trump)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트럼프가 ‘나쁜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품격과 규칙을 존중하는 전통적인 정치인과 다릅니다. 말을 함부로 하며 표현이 거칠고 상스럽습니다. 반대편을 공격할 때는 폭력적 언사도 사용하며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여성 편력과 성 추문은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이지요.
2020년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극성 지지자들을 부추겨 2021년 ‘1·6 연방의사당 난입 사태’를 유발한 것은 법치국가인 미국에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입니다. 당시에 무력 충돌로 의회 경찰관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고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1300명을 넘습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에 트럼프는 성폭행 입막음, 국가기밀 문건 불법 반출, 대선 패배 결과 뒤집기 등 91개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 중 34개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런 중범죄자인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면 인권, 법, 질서와 같은 미국적 가치관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비치니 ‘샤이 트럼프’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의사당 난동 폭도를 ‘애국자’라 부르며 대통령 취임 즉시 이들을 사면하겠다고 호언했습니다. ‘나쁜 남자’의 표상인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게 된 정치 상황을 양식있는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의 수치’요 ‘지성의 몰락’이라고 탄식합니다.
‘나쁜 남자’라는 단어는 능력있고 매력적이지만 인성이 나쁘며 반사회적인 남성을 뜻합니다. 트럼프와 같이 잘 생기고 부자에 똘끼충만하여 좌충우돌하는 망나니 같은 남자에게 딱 맞는 표현입니다.
‘나쁜 남자’는 반골 기질이 강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직선적이고 독단적 성향을 갖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 출마한 이래 지금까지 전통을 무시하고 규범을 파괴하며 시선을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단아 취급받으며 비웃음을 샀지만, 곧 주류 지배층에 대한 반감에 공감하여 지지하는 유권자가 늘어났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를 기소해 재판 과정이 매스컴을 타게 하며 대대적으로 무료 홍보를 해준 것이 패착이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문재인 정부가 윤석렬 검찰총장을 집요하게 공격해 대선 후보로 키워 정권교체의 단초를 만든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입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여러 건의 소송에 걸려 법원에 출두하는 모습이 연일 언론에 나오며 정치적 체급을 키워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소나 소송으로 범죄자 낙인을 찍으면 오히려 ‘나쁜 남자’ 정치인의 위상이 높아지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오늘날의 정치는 예능과 같습니다. 악역이더라도 주연을 맡아 무대의 중심에 서야 박수를 받고 인기를 얻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무시당하거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 나쁜 평판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주목받기 원해 돌출행동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을 ‘나쁜 남자’들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못지않은 ‘나쁜 남자’입니다. 정적을 죽이고 전쟁을 벌여도 끄떡 안 합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만만치 않습니다. 반대파를 숙청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고 호시탐탐 대만 침공의 기회를 노립니다.
국내외 정치에서 나쁜 남자들이 득세하는 현상이 불길합니다. ‘나쁜 남자’는 권위적이라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충성파만 기용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않고 무엇이든지 실행하는 ’상명하복‘의 참모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충성심‘이 강한 인물로만 구성되어 트럼프 대통령이 견제받지 않고 폭주할 것이 우려됩니다.
나쁜 남자들이 강한 권력을 갖고 지배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양보와 타협을 굴복으로 받아들이는 나쁜 남자들이 격돌하면 세계 정치와 경제에 폭풍이 몰아칠 겁니다. 역사적으로도 절대권력을 장악한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나쁜 남자’들이 맞부딪힐 때 세계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트럼프는 중국과 협상할 때 시진핑 주석에게 본인이 ‘미친놈’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힘세고 미친 ‘나쁜 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심히 걱정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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