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기반환점 윤 정권, 의료개혁이 마지막 존재이유
2024-10-29 06:00:00 2024-10-29 06:00:00
약 보름 뒤면 수능일이다. 내년도 대입모집정원이 공지됐고 수시모집 등 전형절차가 이미 시작됐다. 의대 입시가 초미의 관심사다. 전공의단체 등은 ‘내년도 의대증원 백지화’를 철통 고수하고 있다. 의대 교육의 질 저하를 경고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당연한 지적이다. 문제는 백지화가 간단치 않다는 점. 이미 대입 전형이 시작돼 수시면접이 진행중인데 백지화가 가능한가. 백지화는 과연 공정하고 공평한가. 백지화시켰을 때 혼란과 반발을 어떻게 수습하며, 수험생들 피해는 누가 어떻게 조치하겠다는 건가. 백지화로 인한 입시관련 소송이 제기된다면 누가 어떻게 대처할 건가. 전공의들이 대처할 건가. 무슨 자격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전공의 단체에 법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가. 의정협의를 주도하려는 국민의힘이 책임질 건가. 아니면, 최근 전공의단체 대표를 만나 “모든 걸 열어놓고 얘기하자”고 호기롭게 주장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책임질 건가(물론 “모든 것을 열어놓고 얘기하자”고 한 것은 대화 테이블을 만들기 위한 원칙적 얘기였을 것이다).  
 
전공의 측은 이번 대입모집정원이 자신들과의 협의나 동의 없이 정해진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으니 백지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듯하다. 정부  애기는 완전히 다르다. 전체 대입정원 중 의대정원만 의사단체와 상의해서 정한다면 그 또한 형평일탈이자 특례다. 왜 의대만 특례를 적용해야 하고,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대입정원은 공표되는 순간 불특정 다수에게 관여되는 사항이다. 이미 전형절차가 시작됐는데 백지화한다면 국가의 공적 기능과 공신력이 훼손되는 것이다. 의대모집정원은 각 대학이 신청한 규모 내에서 정해졌다. 의협이든 전공의단체든 모집정원 최종공표 전에 의대와 협의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반영했어야 한다. 평소 주장과 모집정원공표라는 입시실무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몰랐나. 몰랐다면 안이한 것이고, 알고도 안했다면 백지화를 주장할 명분이 없다. 
 
그러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지만, 혹시라도 민주당이 전공의나 의사들 듣기 좋으라고 “내년도 모집정원 문제를 포함해 모든 걸 열어놓고 얘기하자”고 한 거라면 그거야말로 무책임한 립서비스나 말의 성찬 아닐까. 만일 숟가락 하나 걸쳐놓고 적당히 생색내다가 “우리는 정책결정권이 없다”며 은근슬쩍 빠진다면 중재가 아니다. 상식과 현실에 비춰 대안이 없을 경우 ‘안되는 건 안된다’고 하는 게 책임있는 자세이자 실효성있는 중재다. 모든 걸 열어놓자는 건 일견 그럴듯해보이지만, 자칫 아무 것도 안되는 것일 가능성도 크다. 
 
그나저나, 도대체 이해 안되는 건 이 점이다. 의대증원이 왜 전공의나 의사들의 허락사항인가. 교대생 정원 늘이거나 줄이려면 교사들 허락을받아야 하나? 인구추계에 따라 교사 숫자 조정하는 게 상식이자 순리다. 의사 숫자도 마찬가지다. 향후 의료수요변동과 인구추계 등 종합검토해 의료인 적정 숫자 정하고 양성해내는 게 상식이자 정부의 책무다. 왜 이익단체에 불과한 의협이 국가의 공적 책무를 가로막나. 교육부와 대학은 의대교육품질하락방지책 만들고, 복지부는 의료수가조정 및 긴급-필수의료분야회생책 등 세우면서, 단계적 증원방식으로 풀어가는 게 타당한 것 아닌가. 이 문제로 언제까지 날이 새고 날이 질 건가. 전공의집단사직과 강경처벌의 옥쇄 대응과 속수무책/지지부진이 되풀이된 올 한 해 동안, 양측(정부와 의사단체) 모두에 대한 국민들 시선은 싸늘하고, 의사단체나 정부 추진력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악화일로다. 
 
‘명운’이라는 말이 흔하디 흔한 말이 되어버려 희화화가 걱정스럽지만, 정부는 정권 차원의 명운을 걸고 의료개혁을 진척시켜야 한다. 2025년 가을부터는 지방선거 준비로 시선과 에너지가 쏠릴 것이다. 그 전에 최소한 뼈대와 주춧돌은 확실히 세워 행여라도 퇴행되지 못하도록 의료개혁을 ‘구조화’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거대 야당도 협조를 천명했다.
 
차제에 용산과 여야에 촉구한다. 주가조작범이나 선거사범, 마약사범, 식음료부정행위범이나 하다 못해 각종 암표상 단속하듯 의료계리베이트도 검경의 직을 걸고 발본색원하라. 그 리베이트? 결국 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한 마디로 공동체파괴범죄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공정과 상식 법치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다. 대통령은 자신이 올 초 제기한 의료개혁에 대통령직을 걸고 총괄 진두지휘해야 한다. 의료개혁을 대통령 고유직무 1순위로 정하고 직무성과를 국민께 수시 보고하는 게 마땅하다. 
 
그리고, 뒷돈은 물론 각종 기기발발한 형태의 리베이트 받아챙기는 의사들은 구속수사하는 게 법치의 형평에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대법원과 검찰의 양형 기준에 따르면, 뇌물수수는 구속이 원칙이다. 그런데 리베이트에 대해서는 ‘걸려도 먹은 돈 토해내고 벌금 얼마 때우면 끝’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법치도 아니다. 공정 상식 법치는 윤 대통령의 핵심공약이자 존재 이유다. 공동체 근간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치죄하는 게 사리에 맞다. 
 
의협 주최 의료개혁저지집회에 자기들 병-의원의 집사처럼 부리는 제약사 직원을 대신 참석시키는 일부 의사들, “말 안들으면 거래 제약사 바꿔치겠다”고 협박했다는 일부 의사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 정도면 파렴치범 수준 아닌가. 이런 ‘의사면허소지자’(의사라는 단어에 ‘스승 사’자가 들어가기에 차마 ‘의사’라고 부르지 못하겠다)들이 무슨 염치로 의대생증원반대며 의료개혁저지를 들먹이는가. 주객전도도 유만부동이지…. 기가 찰 노릇이다. 
 
현 정권은 다른 것 다 포기하더라도 의료개혁은 성공시켜야 한다. 이제 그게 이 정권의 유일한 존재이유처럼 돼버렸다. 그러면 국민들이 지금 내리고 있는 퇴학 수준의 채점에 작게나마 가점을 허락할 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임기 전반기를 온통 김 여사 문제와, 야당대표와의 대선연장전으로 허송하고 국정을 실종시킨 책임을 일부라도 만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임기반환점을 맞아 겸손하고 진지하게 가다듬어야 할 국정담임의 자세이자 책무 아니겠는가.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전 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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