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지난 1일 인천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한 번 불이 나면 순식간에 1000도 이상 올라가는 전기차 배터리 특성상 화재 진압이 쉽지 않은데요. 특히 지하주차장의 경우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하고 충전기도 설치돼 있어 전기차 화재에 취약합니다. 최근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이뤄지며 화재 사고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피해 예방을 위한 법령이나 대응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5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100세대 이상 신축 공동주택은 주차 대수 5% 이상, 2022년 이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2% 이상 범위로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 자동차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합니다.
지난 2일 오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량들이 전소돼 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 대부분이 주차장을 지하에 두고 있고 전기차 충전기도 같은 공간에 설치합니다. 밀폐된 구조인 지하주차장은 화재로 연기가 가득 차면 발화점에 접근하기 힘들죠. 전기차 화재로 우려되는 건 배터리 '열폭주'입니다. 배터리팩이 손상되면 내부온도는 1000도까지 치솟습니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소프트웨어가 배터리 온도가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는 역할을 하지만 배터리에 손상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지상에 전기차 충전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내연기관차 대비 소수인 전기차 운전자를 위한 특혜 시비도 있어 쉽지 않죠.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7건에 불과한 전기차 화재는 지난해 72건으로 10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이 중 9건은 충전 중에, 27건은 주차된 상태에서 화재 사고가 났습니다. 소방 당국은 전기차 충전 시설을 가능하면 지상에 설치하도록 권고하지만 강제 사항이 아니라 거의 지켜지지 않습니다.
또 신축 아파트는 안전을 이유로 지상에 주차장을 만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기차 충전기를 가능한 한 지상에 설치할 수 있게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만들고 지하 주차장 내 소방 시설 설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지하 3층 아래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설치할 수 없게 법이 개정됐지만 이번 화재처럼 지하 1층에서도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며 "규정도 신축 건물에만 적용돼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해 과충전을 막기 위한 시설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통상 급속 충전기는 80% 수준에서 충전을 제한하는 기능이 있지만 완속 충전기는 직접 충전을 중단하지 않으면 배터리가 100%까지 충전됩니다. 전기차 충전비율을 현재의 100%가 아닌 90% 이하로 강제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완속 충전기에 과충전 방지 기능을 탑재하면 한 대당 약 4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과충전방지 기능 없이 보조금 정책에만 맞춘 충전기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며 "최소한 실제 차량을 이용한 과충전방지 기능 시험성적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방법만이라도 당장 실시돼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서울시내 주차장 내 전기차충전소에서 전기차량이 충전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울러 전기차 충전소는 화재가 발생해도 피해자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작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기존 주유소나 LPG 충전소와 달리 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전기안전관리법에는 전기차 충전소 운영 사업자의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아파트나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현재 의무 보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충전소 사업자로부터 피해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현재 전기차를 충전하다 사고가 나면 소비자가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며 "충전 관리 주체들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재난안전법 시행령의 보험 가입 대상 시설에 전기차 충전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안정성을 인증하는 제도가 마련됩니다.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는 자기인증제 하에 제작돼 왔습니다. 자기인증제는 제작사가 자동차에 사용되는 주요 16개 부품에 대해 정부가 정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증하는 제도입니다.
내년부터는 '배터리 사전인증제'를 통해 국토교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국토부는 판매 차량이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 조사하는데 물리적으로 모든 차종을 할 순 없습니다. 이에 배터리만이라도 사전에 안정성을 인증해 화재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국토부의 목표죠.
송지현 자동차안전연구원 중대사고조사처장은 "BMS 기능을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고 의무화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며 "본래 목적인 배터리 관리 기능 이외에도 배터리 이상 감지 범위와 경고 기능 확대, 화재 발생시 경보(대피·신고) 기능을 추가하고 열폭주 전이 지연 성능(최소 시간) 등을 갖추도록 하는 한편, 이러한 안전과 관련된 기능은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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