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김보연 기자] 금융권은 녹색채권 발행, 탈석탄 투자 지양 등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친환경 사업으로 포장하지만 실체는 ESG 성과 올리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환경보호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석탄 등 고탄소 투자에 치중하면서 친환경적 이미지를 내세우는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무늬만 ESG펀드 수두룩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증권업계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적거나 다양한 경영진을 보유한 기업 등 사회에 좋은 영향을 목표로 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ESG펀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품 구성을 들여다보면 친환경 활동 비중이 적은 경우도 많습니다.
코스콤 ETF체크에 따르면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을 모두 더해 친환경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는 상품은 51건뿐입니다. 이 마저도 2차전기, 전기차 관련 상품을 제외하고 기후변화, 탄소중립, 친환경에너지 등을 골라내면 16건에 불과합니다.
대기업 중 석탄기업이나 방산기업으로 분류되는 곳들이 참여한 펀드의 ESG지수가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 AI테마나 2차 전지 테마, 또는 자체 인덱스를 개발한 상품을 ESG상품과 엮어 출시하는 방식입니다.
우리 AI ESG 액티브 상품의 경우 비교지수는 MK-iSelect AI ESG 지수(시장가격지수)입니다. 지난 2014년 설립된 인공지능(AI) 활용 ESG 평가사 지속가능발전소의 AI 기술을 활용한 ESG 평가점수 상위 30% 종목 중 유동시가총액 순위 1위부터 100위까지 종목을 편입하는 지수를 활용하는 상품입니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KB금융, 네이버, 원화예금, 기아, 신한지주, LG화학, 삼성 SDI, 삼성바이오로직스, 하나금융지주,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등이 속해 있습니다. 시총 순위가 높은 기업 참여할수록 ESG 지수 순위도 높았습니다.
전문가들은 ESG 점수를 높게 하려고 친환경과 관련 없는 상품에 ESG를 결합하는 것을 '꼼수'로 보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관계자는 "한국은 광범위한 인덱스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우리도 탈석탄, 탄소배출 기준 등으로 분류 체계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석탄기업이나 방산기업 중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곳이 오히려 ESG지수가 높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019년 12월10일 충남 태안군 석탄가스화복합화력발전소 일대가 흐리게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보험사, 석탄금융투자 의존도 커
보험사들도 대부분 ESG 경영의 일환으로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각 사마다 위원회나 팀을 꾸리는 등 자체적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국내 보험사 중 ESG 위원회나 팀을 설치한 곳은 총 13곳입니다. 삼성·한화·농협·미래에셋·동양·흥국생명 등 생명보험사 6곳, 삼성·현대해상·DB·KB·롯데·한화·농협손보 등 손해보험사 7곳 등입니다. 대부분은 위원회로 운영하고 있고 동양생명은 경영전략본부 내 ESG파트, 흥국생명은 전략기획실 내 ESG팀을 설치했습니다.
보험사들이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타 업권에 비해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 규모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손해보험협회 월간손해보험에 실린 '보험회사의 ESG 경영이 기업의 위험 및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 기준 국내 보험사의 석탄금융 잔액 규모는 생보사가 8조5000억원, 손보사가 6조6000억원 등 총 15조1000억원입니다. 전체 민간 부문 석탄금융 잔액인 20조8000억원의 약 73%를 차지합니다.
보험사의 석탄금융 투자는 주로 투자수익률이 높은 회사채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보험사들은 석탄발전소 관련 건설보험 인수는 중단했지만 운영보험은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ESG 경영과 배치되는 보험사의 단기수익 추구 현상"이라며 "ESG 경영과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카드사 자금조달 목적 증명해야"
카드사들도 최근 친환경·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는 ESG 채권 발행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ESG채권은 녹색채권·사회적채권·지속가능채권으로 구분됩니다.
채권 특성상 사용처는 제한적이지만 일반 채권 대비 금리가 낮고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 개선의 효과가 있습니다. 고금리 등이 장기화되면서 카드사들은 이러한 이점을 가진 ESG채권 발행액을 늘리는 추세입니다.
7개 전업 카드사들은 올해 1분기 기준 9100억원에 달하는 ESG채권을 발행했습니다. 현대카드가 녹색채권 3500억원, 우리카드와 하나카드가 사회적채권을 각각 3900억원, 1700억원씩 발행했습니다. 지난해 카드사들의 ESG채권 총 발행액은 2조3200억원인데 1분기에만 전년의 40%을 발행한 셈입니다.
그러나 중소·영세업체와의 상생,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목적으로 한 카드사들의 ESG채권도 그린워싱 우려는 여전합니다. 일부 카드사들은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가이드에 따라 녹책채권을 내놓기도 합니다. K택소노미는 환경부와 금융위원회는 공동으로 제정했는데, 녹색자금이 탄소중립 등 친환경 산업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입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녹색채권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한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면서도 "지금은 그린워싱에 대한 모니터링이 강하기 때문에 원래 취지에 맞는 사업 목적을 증명할 수 있도록 사후 관리에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보험사들은 ESG위원회를 꾸리며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작 민간 부문 석탄금융 잔액의 73%는 보험사가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4월26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친환경 전기차인 한강 순환관람차가 운행되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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