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법조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법을 다루고 만드는 국회에 유독 법률가가 많습니다. 곧 개원할 제22대 국회에는 판검사·변호사·법학자 경력의 국회의원이 65명에 달합니다. 제21대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이 46명인 것과 비교하면 대폭 늘어난 셈입니다.
원내 제1,2,3당의 대표도 모두 법률가 배경의 정치인입니다. 여당의 수장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때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검사 출신에서 총선 후에는 변호사 경력의 정치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여당 대표 자리를 노리는 정친인들은 대부분 판검사로 명성을 얻은 광역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입니다.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으로 출세가도를 달린 대구광역시 시장은 지금도 톡톡 튀는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행정부도 최상층은 법조인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부터 법률가입니다. 현재의 제20대 대통령은 검사 출신이며, 전임 19대 대통령은 정당은 다르지만 변호사 출신입니다. 차기 대선 주자 1~2순위도 법조인이 차지하고 있으니 제21대 대통령도 법률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법부는 법조인의 독점 영역인데, 입법부와 행정부도 법조인이 지배하여 권력 3부를 통일한 꼴입니다. 가히 대한민국을 ‘법가천하지대본’의 세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법조인이 득세한 것은 요즘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육법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법조인은 육사 출신의 군인들과 함께 권력을 분점하였습니다. 민주화 시대에도 법조인은 새로운 세력과 동맹을 맺어가며 권력을 유지합니다. 여당은 관료와 법조인이 주류를 이루는 ‘관법당’이고 야당은 운동권과 법조인의 양대 세력이 주축인 ‘운법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권력계층은 바뀌어도 법조인의 위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시대와 이념을 불문하고 법률가는 지배계층을 형성하며 그 위세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법이 지배하는 법치국가와 법률가가 지배하는 법제국가는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미국은 대표적 법치국가로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며 법률이 사회질서와 가치를 규정합니다. 우리나라는 법이 아니라 법률가가 정치와 행정을 지배하며 사회를 이끌어 나갑니다. 법률 만능 시대의 징표는 정치의 사법화, 행정의 법제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 정당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타협보다 법에 의존해 해결하려 합니다.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정치적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며 언론에 고발장을 들고 나타나는 촌극이 종종 발생합니다. 공무원은 모든 정책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수립하고 집행하며, 법에 없는 제도는 아무리 필요해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않습니다.
법률가가 지배하는 나라는 얼핏 공정하고 화평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에게 법은 멀고 정의는 법보다 권력과 돈에 의해 실현됩니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법원은 전관예우의 불신을 털어버리지 못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부자나 유명인이 고위급 전관 변호사를 고용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안됩니다.
법조인의 가장 큰 문제는 엘리트 선민의식입니다. 공부 잘하여 명문 법대에 입학하고 어려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검사로 승승장구한 법조인은 가문의 영광이며 고향의 자랑입니다. 그중에서 정치인과 행정가로 성공한 법조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개천의 용으로 승천한 법조인은 공감력이 결여되어 민생을 이해 못합니다. 언론 홍보를 위해 전통시장을 방문해 오뎅을 사 먹지만 소상공인의 애환과 고충은 알지 못합니다.
법률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심판자적인 자세입니다. 옳고 그름은 나의 것이라는 소신을 갖고 남을 판단하며 정죄합니다. 갈등을 대화로 풀지 않고 정면 대결로 치닫습니다.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이 증가하며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심화되고 극렬해지는 현상은 역설적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의 ‘정권심판론’과 여당의 ‘이조심판론’이 맞붙어 극한 대결을 펼쳤습니다.
법리와 논리로 무장한 법률가는 웬만해서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심판자에서 심판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법률가는 변화와 혁신이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의 치부는 보지 못하고 남의 흠만 지적하다 ‘내로남불’의 오류를 범합니다.
법률가는 창조적이나 건설적이지 못합니다. 법이란 틀 안에서 창조는 무법이고 건설은 탈법으로 이해합니다. 법률가 형통시대에 혁신성장이 멈추고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공정도 놓치고 민생도 살리지 못하는 ‘법가천하지대본’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검찰개혁이 아니라 법조인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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