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보험사들이 소비자와의 고지의무 위반 관련 분쟁을 줄이기 위해 자체 시스템 도입에 나섰습니다. 보험 가입자의 기억이나 증비 서류에 대한 의존도가 큰데요. 자금력을 갖춘 보험사들이 자동고지시스템 등을 마련하고 있지만 중소형사들입장에서는 언감생심입니다.
'고지의무 위반' 대표적 분쟁요인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자들이 질병이나 치료 이력 고지를 누락하는 일이 없도록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해 도입했습니다. 고지의무는 보험 가입자의 기억에만 의존하는데, 약관 해석을 오해하거나 질병이나 치료 이력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경우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험 가입자는 과거 5년 이내 병력·치료 이력에 대해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질병·상해 담보 분쟁 민원의 8.5%가 고지의무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고지의무 위반은 약관상 보장하지 않는 보상 범위에 해당되는 약관상 면·부책 다음으로 보험금 부지급률이 높습니다.
고지의무 위반은 보험금 부지급은 물론 상법에 따라 계약 해지 사유가 됩니다.
상법 제651조에 따르면 보험 계약자, 피보험자는 보험계약 체결 시 고지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만약 보험계약 시 보험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거나 고지를 부실하게 했을 경우 보험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 보험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 내에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 계약이 해지된 경우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고 이미 지급한 보험금에 대해서도 반환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보험 가입자는 보험사로부터 고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이 경우에는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보험사들은 고지의무 위반 여부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 고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추세입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질병·상해 담보 분쟁 민원의 8.5%가 고지의무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월12일 서울 한 보험회사 텔레마케팅 사무실 모습. (사진=뉴시스)
대형사들, 선별 시스템 마련 분주
현대해상은 신용정보원에서 제공하는 보험사고 데이터를 활용해 보험 계약 전 보험사에 고지해야할 질환들을 자동으로 선별해 입력해 주는 '바로고지'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현재 판매 중인 1200여개 담보를 질병 치료 내용과 경과 기간 등의 조건에 따라 고지 대상 여부를 자동으로 입력하는 겁니다. 현대해상은 AI기술을 활용해 바로고지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언더라이팅(심사·인수) 자동화 등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삼성화재의 경우 최근 다이렉트 채널에서 암보험을 가입할 때 자동으로 가입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제휴를 맺었습니다. 보험 가입자가 심평원의 건강 데이터 활용에 동의하면 유병자라 할지라도 진료 기록, 투약 정보에 대한 증빙서류를 직접 제출하지 않아도 됩니다.
삼성생명도 지난 2022년 '계약 전 알릴 의무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해 업계 최초로 특허청 기술특허를 획득한 바 있습니다. 고객이 동의하면 보험금 지급 이력을 자동으로 불러오는 시스템입니다. 3개월 내 삼성생명 보험 가입 이력이 있으면 기존 고지 이력을 불러올 수 있고 질병 이름에 유사 검색어 기능을 추가해 정확한 고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보험상품은 청약서상 고지의무 사항에 최근 1년 이내에 추가 검사(재검사) 여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병증 변화나 특별한 치료 없이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과 추적 관찰이 고지의무 대상인 추가 검사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보험 가입자는 보험 가입 전 3개월 이내 건강검진상 당뇨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으나, 당뇨병 투약 등 치료 이력이 없기 때문에 청약 시 질병 의심 소견 여부에 대해 '아니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후 당뇨병을 진단받으면서 관련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는 3개월 이내 질병의심소견 미고지를 이유로 계약 해지 및 보험금 부지급 판정을 내렸습니다.
보험사와 보험 계약자 간 오해의 소지가 다수 발생하자, 금감원은 올해 초 고지의무와 관련해 보험 계약자에게 불리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보험약관 개선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약관 상 고지의무에 추가 검사 여부를 포함해야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추적 관찰과 정기검사는 고지의무가 아니라는 점을 명문화한 겁니다.
다만 고지의무 위반 여부 확인은 여전히 보험 가입자 증빙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관련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험사들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동 심사 시스템 또한 개발 여력이 있는 대형사 위주로 도입되는 상황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명의무 등을 강화하며 고지의무 위반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동 심사는 곧 빠른 보험가입으로 이어지는데, 회사 규모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보험사들은 고지의무 위반 여부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동 고지 시스템을 도입하는 추세사진은 3월 8일 서울 한 건물에 약국과 병원의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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