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재명 대표가 불편해 할 사람은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쓰지 않겠다”고?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어이없는 막후 뒷거래이자 한참 잘못된 번짓수다. 살펴야 할 것은 국민 눈치지 이 대표 눈치가 아닌데, 이런 말이 오갔다는 전언 황당하다(이 대표는 “경쟁은 많을수록 좋다. 원희룡 전 장관은 양평고속도로 특혜의혹 관련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차기 대선이 용산과 이 대표 사이의 흥정거리인가. 불편해 할 사람은 빼겠다는 게 협치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용산이 공식적으로는 비선을 부인하지만, 함성득-임혁백 두 사람이 동시에 거짓말을 했으리라고 보는 건 무리다. 민주당 박성준의원도 “비선 개연성은 있다”고 했고, 용산도 비선 존재를 부인한 게 아니라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밝히는 걸로 봐서 교섭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게 맞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현재로서는 가려내기 쉽지 않지만, 정치적 이유에 따라 비선을 통해 흥정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반이자 밀실 야합이다. 과거 영수회담 중 ‘사쿠라 논란’이나 밀약설로 국민적 불신과 의혹의 진원지가 됐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언제는 범죄자라서 못 만난다더니 이제는 두 부부 모두 사법리스크가 있어서 동지가 된 것이냐”는 일갈은 통렬하다.
#2.
어이 상실 또 하나.
민주당 조정식 “명심은 당연히 저 아니겠나”, 정성호 “대표와 측근에 출마 밝혔다”, 추미애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 우원식 “국회법이 규정한 중립의 협소함을 넘어서겠다”. 총선 후 민주당 내 국회의장 희망자들의 포부이자 출마의 변을 전하는 기사다. 기사 제목을 보다가 ‘명심’이 뭔지 잠시 멈칫했다. 뭘 명심하겠다는 거지? 이거였다. 명심(明心). 이재명 대표의 마음. 국회의장 해보겠다는 사람들은 국회의장을 이 대표가 임명하는 자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당혹을 넘어 한심스러워진다.
국회 통과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는 이번 총선에서 정권심판의 주요한 사유 중 하나였다. 거부권에 대응하는 방법을 두고도 후보들간에 말이 나왔다. 조정식 의원이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의 재의결 가결선을 현행 200석에서 180석으로 낮추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추미애 당선인은 “대통령의 적절한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헌법상 원리로서 필요하다. 의석 수를 낮춘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자신은 민주당을 지원하는 의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왜 하필 180석으로 낮추려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으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등 범 야권이 얻은 의석 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의 중립적 국회운영, 즉 여야 합의를 주문해온 것 때문에 민주당이 그간 애를 먹었고, 그래서 ‘여지껏과는 다른 의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타당성을 떠나 일견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총선 후 이 대표에 대한 충성과 환심을 내세워 국회의장이 되보겠다고 당내 강성 지지자들을 향해 노골적 마케팅을 경쟁적으로 펼치는 것은 국회의 권한과 신뢰, 권위 등 그 어느 것을 생각하더라도 합당하지 않다.
도처에 정치 9단이 많으니 이제 정치 10단으로 차별화되는 게 맞다고 말해온 어느 정치인이 마이크 꺼진 줄 몰랐다는 빤한 거짓말로 포장하며 국회의장을 “이 놈, 저 놈”으로 지칭한 것을 타박하려는 게 아니다. “의장은 정계의 가장 큰 어른”이라는 케케묵은 클리셰를 반복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 국회법이 왜 의장에게 중립을 요구하는 지를 생각해보고자 할 따름이다. 현행 국회법은 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20조의 2에서 당선된 다음 날부터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의장의 권한은 국회대표권, 의사정리권, 질서유지권, 사무감독권과 기타권한이 있다. 의장은 대외적으로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 최고기관으로서의 역할과 대내적으로는 국회의 질서유지와 국회사무를 감독하는 역할수행이 주요 임무다. 대표자와 질서유지자 차원에서 중립을 요구하는 것이니, 특정인에 대한 충성심은 의장 직무수행과 무관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민주당 당선인들과 국회의장 후보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이 대표가 당선시켜준 게 아니라, 정권심판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돼 민주당이 압도적 1당이 된 거고, 조국혁신당이 괄목할만한 의석을 얻은 것이다. 민주당의 자력 득점에 의한 대승이 아니라 국힘의 처참한 참패이며,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한 승인이 아니라 윤석열정부에 대한 심판이라고 보는 게 이번 총선에 대한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국회의장은 여야가 정파적 이익에 몰두해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때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다(조응천 의원). 명색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명심만 팔아서야 어떻게 의장과 국회의 권위와 신뢰가 생기겠는가.
총선이 하늘같은 민심의 경고를 분명히 했음에도 총선 끝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건만 용산이나 민주당에서나 기가 막힌 일들이, 어이 없는 일들이 일상화되고 있다. 개탄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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