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뒷정리를 하다 말고 이상한 소리에 잠깐 설거지를 멈춰 보았다. 역시나, 둘째의 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책 보는 것 같더니 무슨 일이지? 다가가 문을 열고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책상에 엎드려 흐느끼는 중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 나 마음이 너무 아픈데 어떡해.”
그러면서 아이는 책상에 놓인 책을 가리켰다. 요전 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다던 소년과 거인의 우정을 그려낸 동화였다. 연로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소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마을사람들에게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고, 하염없이 소년을 기다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거인은 몹시 통곡하는데, 그처럼 슬픈 결말에 그만 눈물이 터진 모양이었다. 별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싶은 그런 마음.
올해 여덟 살이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아이는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평소 눈물이 많은 편이긴 했으나 여태까지는 야단을 맞거나 오빠와 다투었을 때, 혹은 친구가 서운하게 했을 때 흘리는 눈물이 전부였다. 어떤 이야기를 읽고 거기에 이입하여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경험은 아마 낯설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그냥 재미있는 책인 줄 알았단 말이야. 대체 왜 이런 슬픈 이야기를 쓰는 거야?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 만들면 되잖아. 이런 줄 알았으면 보지 말걸.”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아이는 말했고, 그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독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드는 시대, 그중에서도 슬프거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더더욱 외면받는 세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기를 끄는 컨텐츠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재미를 주거나 혹은 가볍게 휘리릭 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도파민 폭발’로 요약되는 것들.
흐느끼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려는 이들의 마음이 새삼 이해갔다. 슬픔은 힘들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며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라 안팎으로 벌어지는 비극적인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또한 비슷한 연유일 것이다. 자기 삶도 버거운 상태에서 타인의 슬픔까지 마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문제는 우리의 실제 인생이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컨텐츠들보다는 슬픔과 비극에 보다 가깝다는 사실이다. 삶에는 예정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슬픔이 가득하다. 버겁고 힘들다는 이유로 슬픔을 외면하고 차단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정작 슬프고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날 아이에게 말했다.
“전에 엄마가 무서운 꿈을 꾸는 이유 설명해 준 적 있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어둡고 무서운 것들을 미리 훈련하는 거라 그랬잖아. 슬픈 이야기도 비슷해. 세상에는 행복한 일만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상에 어떤 슬픈 일들이 있는지, 그때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지, 그런 일이 나한테 생기면 어떤 기분이 들지를 알아보는 거야. 그래서 속상한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해주고, 부당한 일에는 맞서 싸우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기도 하고, 나한테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진심으로 슬퍼하는, 그런 연습을 하는 거야, ”기도 하고, 나한테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진심으로 슬퍼하는, 그런 연습을 하는 거야.”
세월호 참사 이후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벌써 10년이나 됐느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멈춰있던 10년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버겁고 힘들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달이 되기를 바란다.
한승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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