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이승재 기자] 탄소중립을 위한 글로벌 합의가 어그러질 수도 있는 불확실성 속에 다자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습니다. 각국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로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에 대응하기보다 유연한 외교전략이 필요하다는 관측입니다. 또한 민간의 RE100(신재생에너지100%)과 정부의 CF100(원전 포함 무탄소전원 100%)이 충돌하는 환경에서 민간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습니다.
3일 국내 탄소중립 전략에 대한 전문가들 의견을 취합한 결과, 외교적으로 다자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게 유리하다는 데 중지가 모였습니다.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무역통상의 이해관계와 얽혀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 대표적으로 기후변화 협약 탈퇴 의사를 거듭 시사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불확실성을 키웁니다. 트럼프는 최근에도 “전기차는 다 중국이 만들 것”이라며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을 폐기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습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떠밀려 현지투자를 확대했던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기업은 진퇴양난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된 상황도 각국의 보호주의를 자극합니다. 이는 탄소중립 이행 속도를 늦추게 만듭니다. 산업연구원은 6월 유럽의회 선거와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사회 추진 속도가 다소 늦춰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례로 서방국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면서 전쟁에 따른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중국과 인도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저렴한 원유, 가스 수입 반사이익을 누립니다. 이는 각국의 연대를 약화시켜 보호주의를 키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가 당선되면 단기적인 미국 이익을 우선시함으로써 서방국가의 연대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해 한국도 가입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지난해 11월 저탄소경제가 골자인 청정경제 필라3를 타결했습니다. 트럼프 당선 시 보호주의 기조로 IPEF 탈퇴 또는 파기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미국만 보면 발등 찍힐 것”
김동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EU는 2020년대 들어 산업정책과 기후변화 정책이 융합한 다양한 탄소중립 정책을 유례없이 추진 중”이라며 “미국과 EU 리더십의 보수화 경우에 탄소중립 정책 기조에 근본 변화가 예상되며, 이는 글로벌 탄소중립과 공급망 재편 추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공급망 안정화, 국제통상질서의 변화, 탄소중립, 디지털 통상 등 주요 통상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소규모 다자 협력체계 구축과 참여가 필요하다”며 “단기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에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중장기적으로 상호 동반성장이 가능할 협력방안 도출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전세계 GDP를 보면, 미국이 24조달러, 중국이 16조달러, 유럽은 모두 합쳐 약 15조달러 정도인데, 우리는 무역의존도가 중국 33%. 미국 약 17% 정도까지 올라왔다”며 “유럽도 버금가는 시장으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모두 중요한 파트너로서 무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선진시장에 대한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공통점은 전세계 기업의 화두인 ESG, RE100을 고려해서 환경을 생각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다소 미국에 편중된 외교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많았습니다.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미국이 갈수록 더 보호주의를 압박할 텐데 우리는 주로 미국만 바라보고 있다”며 “지난 수년간 미국에 천억달러 넘게 투자했는데 돌아온 게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파리 협약에서 합의 봤던 기후 관련 규제들이 민족주의 때문에 유지 불가능한 수준까지 내몰릴 것”이라며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브릭스 국가들은 수준 높은 환경규제를 할 생각이 없다. 국익과 실익이 없으면 (합의는)유지가 안된다는 얘기. 결국 우리도 하라는 대로 따라만 가서는 자기 발등을 찍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RE100 달성은 정부에 달렸다”
국내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해 탄소중립 이행이 어려운 장벽에도 부딪혔습니다. 국내선 RE100 달성이 어려워 기업들이 해외 이탈할 것이란 우려가 벌써 팽배합니다. 정부는 국내 유리한 원전 중심의 CF100으로 글로벌 합의를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민간 합의인 RE100은 이와 별개라서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을 찾게 되는 실정입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교수는 “RE100 달성을 선언한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며 “원자력을 포함해 신재생에너지를 믹스해야 하는데, 현재 배전시스템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소화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프라 구축 권한은 정부가 갖고 있어, 기업의 RE100 달성 여부도 정부에 달렸다”며 “유럽이나 미국, 일본은 정책을 만들어 힘쓰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더디게 가고 있다. 국가적으로 인프라를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원전을 지어도 송전탑을 새로 못 만들어서 송전하기 어렵다”며 “RE100을 하려면 동남권에 해상풍력을 더하고 태양력과 분산형 전원을 활용해 RE100 산업클러스터 같은 걸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재영·이승재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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