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읽기를 잘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읽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쓸 가능성은 아주 적다. 글을 쓰다 보면 늘 소재나 아이디어에 굶주리게 된다. 예전에 무심히 보았던 책이나 넋을 놓고 들었던 이야기도 글을 쓰게 되면 그 주목의 강도와 밀도가 달라진다. 즉 쓰기는 적극적 읽기와 듣기를 추동한다.
공부는 읽기가 그 바탕이 된다. 읽기 능력인 문해력이 높다면 공부를 잘 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심지어 수학과 과학 과목까지 예외가 아니다. 문해력이 높아야 공식과 개념의 바탕이 되는 원리를 잘 이해하고 시험문제의 답변을 잘 맞출 수 있다. 공부는 이렇게 쓰기와 읽기와 선순환 관계 속에 놓여야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학 입시나 취직 시험은 어떨까? 자기소개서나 면접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쓰기와 읽기의 선순환 능력이 결정적이다. 엄마 아빠들이 자녀들의 글쓰기에 걸고 있는 기대는 이런 점에서 타당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는 거기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읽기와 쓰기의 선순환 능력은 전혀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략 한 두 개의 전문적 능력이나 학력으로 직업을 갖게 된다. 이것은 다만 현실의 첫 번째 문을 연 것에 불과하다. 물론 첫 번째 문을 열고 만난 일자리가 평생 직업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적게는 서너 번에서 많게는 대여섯 번 직장이나 직업을 바꿔야 한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 뿐만 아니라 연애, 결혼, 양육, 커뮤니티 등 우리를 기다리는 문을 계속 만나게 된다.
생물학자 최재천 선생은 ‘곁쇠 교육’이란 칼럼에서 ‘첫 직장의 문이나 열어주는 평범한 열쇠가 아니라 평생 여러 직장의 문에 꽂아볼 수 있는 곁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곁쇠는 영어로 이야기하면 마스터키다. 최 선생은 마스터키로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것은 쓰기와 읽기를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인문학과 기초과학은 교양적 지식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이다. 쓰기와 읽기 능력을 키우는 것은 인생의 여러 문을 열 수 있게 해주는 마스터 키를 갖는 셈이다.
한 분야의 확고한 전문가가 됐을 때도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그냥 연구만 하고 논문만 쓰는 과학자와 연구를 하면서 그 성과를 일반인들도 알 수 있는 글로도 쓰는 과학자가 있다고 치자. 그들이 걸어가는 길은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과학계 내부 동료 연구자 집단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뿐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후자는 과학계 내부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의식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갈릴레오, 다윈, 아인슈타인, 호킹, 파인만은 탁월한 문필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했다. 요즘엔 글 잘 쓰는 과학자들이 TV 교양이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활약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글쓰기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이들은 그 기회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챗GPT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AI 개발은 컴퓨터 과학자와 IT 전문가의 몫이다. 그러나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프롬프트란 말이 생소하겠지만 결국 본질은 글쓰기다. 글쓰기를 잘해야 AI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