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라는 전설 속 고대 도시 이야기의 기원은 의외로 비교적 최근(?) 문헌, 그러니까 약 2500년 전에 플라톤이 쓴 순수 창작물인 <크리티아스>라는 대화편이다. 내가 보기에,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대해 기술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실제 지리나 연대와 끼워맞춰 보려는 시도는 흥밋거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의미 있는 건, 사실 전쟁에 패배한 채 멸망한 것으로 그려지는 아틀란티스가 플라톤 당대의 아테네를 닮아있다는 점이다. 아테네인들의 무절제한 성품과 소유에 대한 욕망이 신화 속 아틀란티스에 고스란히 재현되어있고, 그렇기에 아틀란티스의 패배와 멸망은 마치 당대의 아테네가 겪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패배와 내전을 겹쳐보게 만든다. 결국 플라톤은 사라진 전설 속 한 국가를 통해, 때늦어버린 경고를 남긴 셈이다. “이렇게 살다가 망할 줄 알았지!”
예수가 복음서에서 말한 “환난의 때”라든가 “하느님의 심판” 등이 지금 기독교에서 해석하는 것처럼 내세 혹은 세상 끝날의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이 아니라, 실은 현실적인 사건, 즉 유대인들에게 닥칠 정치적, 사회적 파국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당시 권세와 돈을 가진 엘리트들과 종교적인 권위를 가진 계급은 서로 결탁해 사회를 통제하고 옭아매며 권력을 유지했고, 다른 한 편 억압받던 민중은 힘으로 로마의 지배를 뒤집어엎으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과격한 저항운동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아주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을 요구한 것이었다. 서로를 억압하고 타도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선민의식을 버리고 이방인을 차별하는 태도를 멈추라. 사회적 약자, 즉 몸파는 여성, 로마의 앞잡이인 세리, 질병에 걸린 이들을 멸시하지 말라.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과 그럴 능력조차 없는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을 갈라치지 말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피지배자들의 저항과 폭력은 극에 달해 결국 로마와 정면충돌할 것이다. 결국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 진압된 유대인들은 그 후 2000년간 전세계를 떠돌아야 했다. 이 예언을 하기 위해 예수에게 무슨 신통력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몇 발 앞서 미래를 꿰뚫어보았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몇몇 민주당 정치인들이 시도해온 지역균형발전 정책, 이를테면 행정수도 이전이나 서울 외 메가시티 구상이 아마도 “이렇게 살다간 다 망해”라는 외침에 해당했을지 모르겠다. 젊은 인구를 빨아들여 집중화된 서울과 경기도에서 통근 시간과 주거 및 생활비 부담 때문에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을 경제적 기반이 무너졌다는 것이 지금의 저출생이라는 재난적 상황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역시 “이렇게 살다간 다 망해”라며 외치는 정당이 있다. 바로 녹색정의당이다. 특히 기후위기와 지역소멸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전면에 내세운 안동 지역활동가 출신의 허승규, 대기과학자 조천호 같은 비례대표 후보들이 눈에 띈다. 이미 충분히 산업화을 이룬 여러 국가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것과는 달리, 눈에 닥친 정치적 현안들이 많아서인지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유독 기후위기에 덜 민감하다. 예수의 종말론적 예언이나 플라톤의 회고적 경고와 달리, 우리는 이제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 총선에 출마한 이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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