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의정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건강보험 강화, 의료 영리화 중단, 공공의료 확충 등 의료개혁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참여연대, 양대 노총, 보건 관련 단체들이 결성한 ‘무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14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의정 갈등 속에서 외면된 공공의료 등에 대한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한성규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을 발표했지만, 내용 그 어디에도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공공의료는 없고, 기존에 실패한 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이라며 “한국의료 체계의 본질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료 산업화 민영화를 중단하고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를 살릴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강성권 국민건강보험노조 부위원장이 14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무상의료운동본부 총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건강보험 보장률 OECD 평균 끌어올려야”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의료개혁 과제로 가장 앞세운 것은 건강보험 강화입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고 돈벌이를 부추기는 낭비적인 진료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21년 기준 64.5%로 OECD 평균보다 10% 이상 낮으며,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최초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목표를 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보장성을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운동본부에 따르면 정부는 법정기준에 따라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 가량으로 정하고 있지만, 평균 14%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원금 지급조차 미루며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운동본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막고있는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기 위해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의학적 근거가 있고 환자에게 필요한 비급여를 급여화하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비급여를 퇴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총선 이후 열릴 22대 국회에 건강보험 재정 정부 지원 한시적 조항을 항구적 법제화해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고 정부 지원금을 최대 절반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소득뿐 아니라 고액 자산에 대해서도 누진적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사회보험의 역할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강성권 국민건강보험노조 부위원장은 “윤석열정부 2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며 “오히려 재정 건전화라는 이름으로 보장성 축소화, 의료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어 많은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이 14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무상의료운동본부 총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필수의료 붕괴 해법, 의료 민영화 중단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필수의료 붕괴의 주원인으로 의료 상업화와 상품화를 꼽았습니다.
의료가 돈벌이 시장이 되다보니 대형병원들도 환자를 살리기보다 수익 추구에 집중하며 과잉진료로 몸집만 불리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비급여와 실손보험 시장이 팽창하면서 의사들도 더 과잉 진료에 몰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해법은 의료 민영화 중단으로 의료 산업화에 앞장서는 정부와 대치됩니다.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중단하고, 영리병원을 금지하며, 디지털헬스케어·첨단재생의료법 폐기, 병원 인수·합병 허용 추진 중단 등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필수의료에 의사가 없는 건 큰 병원에서 환자를 살리기보다는 팽창하는 비급여 시장과 실손보험 시장을 통해서 병원에서 수익 추구에 몰두하는 자영업자 의사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의료 시장화 상품화 정책들이 계속해서 이런 돈벌이 진료를 부추기고 필수 의료 부문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병원 밖으로 유출시키고 있는 것인데 이런 부분들을 해결하는 게 바로 진짜 의료 개혁”이라고 말했습니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이 14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무상의료운동본부 총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의사를 '얼마나'보다 '어떻게' 늘리냐 중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필수의료의 붕괴는 공공의료의 위기와도 직결됩니다.
민간병원은 수익 추구를 할 수밖에 없고, 사람을 살리는 데 자원과 인력을 배치하기보다 수익성 높은 진료에 우선순위를 두기 마련입니다.
의료가 시장과 산업 형태로만 방치되면서 피부·미용·성형 과목에 의사들이 몰려 비급여로 돈벌이하기 쉬운 일만 하는 현실도 꼬집었습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현재 10% 수준에 머무는 공공병상 수준을 OECD 평균 71%까지는 안 되도, 30% 수준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중진료권마다 최소 1개 이상 공공병원을 갖추고, 공공병원 설립 시 예비타당성을 면제하고 적자를 보전하는 방안으로 공공의료기관을 강화하자는 목소리입니다.
의사 증원의 경우에도 단순히 숫자만 늘릴 것이 아니라 공공의대를 신설하거나 국립대 의대 정원을 늘려 지역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 의사 의무복무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대형병원들의 필수과목 전문의 고용 의무화,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등도 과제로 함께 제안했습니다.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은 “지금 같은 시장 방임적 의료 체계를 그냥 두고는 의사를 늘려서는 지역 필수 의료 부문에서 일할 의사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라며 “낙수 효과에 기대하는 것은 효과도 없을 것이고, 불필요한 과잉 진료와 비급여 과열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의사를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늘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14일 참여연대에서 열린 무상의료운동본부 총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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