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의 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이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김 전 실장은 오는 29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사외이사로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이 회사는 “전체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이뤄지고 각국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현 시점에서 김 후보자가 가진 외교통상 분야 지식과 경험이 회사 경쟁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의 깜짝 영입을 둘러싸고 언론계는 배경을 궁금해했다. 김 전 실장은 통상 전문가라기보다는 외교안보 전문가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그는 국제경영, 국제경제가 아니라 국제안보, 미국 외교정책, 한미관계가 전공 분야다. 김 전 실장이 해외 매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회사 쪽 설명은 근거가 약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 대광초등학교 동창으로 현 정부 초대 안보실장을 맡았다. 지난해 3월 퇴임 뒤에도 각종 포럼에서 윤석열 정부 안보정책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정책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런 정황 때문에 한화오션과 해군 함정 수주 경쟁을 벌이는 HD현대중공업이 김 전 실장을 대정부 창구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고 언론은 해석했다.(<한국일보> 24년 2월28일치)
이런 상황에서 한화오션이 지난 5일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에 그 회사 임원급 개입을 밝혀달라며 HD현대중공업을 경찰에 고발했다. 방위사업청이 지난달 27일 HD현대중공업의 불법행위는 직원들이 저지른 것으로, 대표와 임원 개입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입찰 자격 유효’를 결정하자, 이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상대가 누가 되든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극한 대결 분위기가 느껴진다. 업체 사이에 간혹 벌어지는 소송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해군 함정 건조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입수해 유포하다가 적발돼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청렴 서약을 위반한 업체한테 1개월~5년 범위에서 입찰 참가를 금지할 수 있다. 한화오션은 이 사건을 통해 경쟁업체를 배제하리라고 기대하다가 정반대 결과를 접하게 됐다. 그때 마침 HD현대중공업쪽이 김 전 실장을 영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화오션 쪽은 의구심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됐다.
방위산업에서도 업체들은 경쟁하기 마련이다. 경쟁이 지나쳐 진흙탕 개싸움으로 치달으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문제가 생긴다. 가령 6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캐나다 잠수함 수주 입찰의 경우, 워낙 규모가 크니 우리 조선 회사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참여해야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지금처럼 극한 대립을 벌인다면 업계가 협업할 수 있겠는가.
우리 방위사업은 비리가 많다고 악명이 높았다. 검찰과 경찰이 업계와 방위사업청을 수시로 털었고 업계는 사업 의욕이 위축됐다. 전임 정부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인 왕정홍씨와 군인이 아닌 직업공무원 강은호씨가 방사청장을 잇달아 맡아 비리를 예방하고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임 정부 5년 동안 큰 비리가 불거지지 않았으며 방산 수출이 늘었다.
방산업계가 극한 갈등을 벌이다가 모처럼 꽃을 피우려는 K방산 경쟁력을 갉아먹지 않을까? 업계가 방사청 결정에 전혀 승복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방사청은 무기 체계 조달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는 건가? 김성한 전 안보실장 처신은 투명한가? 안보실장을 지낸 인사가 방위산업 연관 기업에 곧바로 취업하도록 허용한 인사혁신처 공직윤리 심사에는 문제가 없나? 안보 허점은 안 생기나?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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