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민주당 공천 파동이 비명계를 넘어 친문계 배제로 치달으면서, 역설적으로 여권의 '문재인정권 심판' 주장과 궤를 같이 하게 됐습니다. 친문계를 이루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의 퇴장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한 '운동권 청산' 구도와도 일치를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당권 장악과 총선 승리라는 추구하는 이해도, 공천 과정도 "마치 한 배를 탄 것과 같다"는 힐난마저 쏟아집니다.
공통점은 또 있습니다. 이들 모두 극단적 진영논리에 편승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개딸'(개혁의 딸)만 바라보며 한 치 물러섬 없는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다수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 결국 정치 혐오만 키웠습니다. 한동훈 위원장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의도 문법'에서 벗어나겠다고 했지만, 정치신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감각을 선보이며 민주당의 집안싸움을 즐기는 모양새입니다.
최재성 "전 정부 책임론, 윤석열정권 논리"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수석은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 공천 파동에 대해 "당에서 문재인정부의 책임있는 사람은 험지를 가라고 하고, 뭔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문재인정권 심판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최 전 수석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과 관련해 "전 정부 책임론인가, 그러면 윤석열정권하고 똑같은 논리고, 국민의힘하고 똑같은 논리"라고 꼬집었습니다.
친문계 좌장으로 꼽히는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온 국민이 정치검찰, 윤석열 독재정권을 끝내야 한다, 이걸 심판해야 한다는데 거기에 우리가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정권을 심판하고 친문, 비명, 반대파를 심판하는 것에 지도부가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가 잘못해서 우리가 정권을 뺏겼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일했던 대통령 비서실장이든 장관이든 책임져야 된다(는 게 당 지도부의 논리)"라고 주장했습니다. 홍 의원은 전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재명 대표를 앞에 두고 "남의 가죽(을) 그렇게 벗기다간 자기 손도 피칠갑될 것"이라고 작심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문재인정부 책임론'은 임혁백 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윤석열정권 탄생 책임론' 발언으로 촉발됐습니다. 임 위원장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의 탄생 원인을 제공한 분들 역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선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친문계의 불출마 희생을 압박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임 위원장의 발언 이후 공교롭게도 친문계 핵심 인사들에 대한 공천 배제 작업이 현실화 됐습니다. '명문(이재명-문재인) 정당'이 '멸문 정당'이 됐다는 푸념까지 나왔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동훈 대 이재명…86 청산은 '한 편'
한동훈 위원장과 이재명 대표는 '운동권 청산'이란 프레임에 있어서도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지난해 12월26일 취임사를 통해 "대대손손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정권 심판론에 맞설 키워드로 운동권 심판을 꺼내들었습니다. 이후 줄곧 '운동권 청산'을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으로 내세우는 등 구도 전환에 애를 썼습니다. 공천 과정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을 운동권 출신 민주당 인사들과 '맞대결'을 펼치게 하는 방식으로 각을 세웠습니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전 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출마가 사실상 무산됐지만, 국민의힘은 그의 대항마로 윤희숙 전 의원을 공천했습니다.
민주당의 경우, 임 전 실장에 이어 이날 대표적인 운동권 출신인 기동민 의원을 사실상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기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성북을을 전략선거구로 지정한 겁니다. 임 전 실장과 기 의원 등에 대한 공천 배제를 두고 당내에서는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 복사판"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 친명계 지도부 인사는 "86 용퇴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다"며 국민힘과의 연관성 주장에 대해 불쾌감을 표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의 '운동권 청산'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대표가 한 위원장의 '운동권 청산론'에 동조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86그룹' 청산에 있어서 한 위원장과 이 대표가 적어도 '한 편'이란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준 겁니다. 이에 대해 최 전 수석은 "한 위원장이 당대표를 3개나 하는 것인가"라며 "국민의힘하고 민주당에도 운동권 청산론이 먹히고 비례정당 대표도 하는 격이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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