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열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경호원들에 의해 식장 밖으로 끌려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강 의원과 야당 측에서는 이를 부당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입법부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하였다. 강 의원이 실제로 경호원들이 개입할 만한 위협적인 행동을 했는지, 구체적인 전후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여러 문제가 제기될 법하지만, 나는 여기서 (2023년 WBC 한국대표팀의 졸전을 비난하는 가운데, 한 언론사에서 “한국 야구, 팬들 책임은 없나?”라며 대형 ‘어그로’를 끌었던 것처럼) 다소 다른 문제를 제기해보고자 한다. 강 의원이 당한 폭력, 옆에 서있던 사람들 책임은 없나?
자유주의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자유롭다는 것은 도덕적 규범이다. 만약 한 사회가 민주적이면서도 자유주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존립 조건으로서 유효할 것이다. 문제는 자유나 평등은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이자 고전연구자인 조사이아 오버는 『자유주의 이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23) 6장에서 자유와 평등이 실제로 삶에서 체험됨으로써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이에게 시민으로서의 존엄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애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나의 윤리적 의무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는 시민들이 동료 시민들의 존엄을 서로서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또 다른 윤리적 요구로 이어지며, 이는 곧 시민들이 존엄의 침해에 대한 공유된 인식을 갖고 그것이 발생했을 때 자신들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행동양식을 평소에 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다른 동료 시민들의 존엄을 서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윤리 및 그러한 행동양식을 따르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강 의원이 당한 폭력에 적용해 생각해보자. 자유와 평등이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혹은 인간이 타고난 권리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에, 강 의원이 당한 폭력은 비도덕적이라고 혹은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비난이든 평가든 모두 사후적인 것이며, 문제의 현장에서 그는 이미 자유를 무시당했고 모욕을 경험했다. 만약 우리 민주주의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시민적 동원’ 내지 ‘시민들의 직접 행동’의 매커니즘을 평소에 잘 발달시켜 왔다면, 옆의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막는 폭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집단행동을 통해 경호원들을 제지하고 항의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폭력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강 의원의 시민으로서의 존엄은 지켜졌을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취임사에서 화제가 되었던 ‘동료 시민’이라는 호명이 함의하는 바가 바로 이와 같다. 민주국가에서 서로를 동료 시민이라고 인정하고 부른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시민으로서의 존엄이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한다는 선언인 동시에, 다른 동료 시민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는 다짐이기도 것이다. 한 위원장은 생각한 것이 과연 이렇게나 ‘불온하리만치 능동적인’ 시민들이었을까? 이런 매커니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폭력의 현장에서,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참으로 공허했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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