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지나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고대인들이 발견했을 자연의 주기적 변화와 계절의 반복은 농경의 시작을 이끌고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여전히 우리의 삶과 일상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주기성과 반복의 배경에는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움직임이 있다.
새해 벽두부터 나는 책장에 꽂혀있던 골드슈타인의 '고전역학'이라는 낡은 책을 한번 펼쳐보았다.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터 행성이 태양의 주위를 타원의 궤도로 움직인다는 결론을 유도하는 과정을 훑어보았다.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길이였지만, 논증은 우아하고 명확했다. 해가 바뀐다는 너무나 익숙한 일의 배후에 있는 타원의 존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새삼 놀라며 이 심오한 사실을 음미하곤 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 도서관에서 ‘해석역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빌려 바로 이 내용과 혼자 씨름을 하던 순간들이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미적분학은 돌이켜보면 나에게 큰 감흥을 준 적은 없었다. 대체로 기계적인 절차만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당시의 내가 가진 미적분학에 대한 인상이었다.
인류의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몇 개 골라야 한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옛날의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이 사실을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당시로서는 반역적인 주장을 제시했다. 케플러는 관측 데이터의 탁월한 분석을 통해 지구가 태양을 타원 궤도로 돌고 있음을 밝혔다. 이후 뉴턴은 몇 가지 간단한 운동법칙을 통해, 어째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에 대한 최종적 설명을 제시하였다. 이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뉴턴은 미적분학을 개발했다. 이렇게 완성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라는 계몽시대의 새로운 믿음이 탄생했다.
대학에 와서 행성의 타원 궤도를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나는 미적분학 안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힘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인류의 지적 여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자신의 머리로 스스로 이해하는 경험은 꽤 감동적인 것이었고, 여기엔 큰 배움의 기쁨이 있었다. 그것은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돈다’는 문장을 단순히 읽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지난 연말에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문과와 이과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같은 시험을 보게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선택과목이던 미적분Ⅱ와 기하도 시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위에 언급한 고전역학 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을 따져보니, 바로 이들 교과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이다. 탁월성을 강조하는 것은 대체로 보수의 입장인데, 이번 결정은 모두가 같은 시험을 보는 것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저마다의 중요한 가치를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인 만큼,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통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을 것이다.
많은 배움이 그렇지만, 미적분은 단지 어려운 공식들의 모임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해가 바뀌는 것 같은 일상적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거기에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흔한 수사적 표현 뒤에 놓인, 흥미진진한 인류의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 되어 문과를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대개는 타원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꽤 놀란 적이 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사라질 새로운 세상에서는 그러한 칸막이가 조금은 낮아지기를 기원해 본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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