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퇴임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있었다.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회 의사당을 점거한다고 소란을 피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해서 미국과 중국이 전쟁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걱정했다.
그때 마크 밀리 미군 합참의장이 업무 상대방인 리줘청 중국 합참의장과 직통전화로 통화한다. 밀리 의장은 “미국은 중국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중국을 안심시킨다. 핵무기를 갖춘 미중 두 강대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소소하게 충돌하다가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군사 핫라인을 통해 슬기롭게 막았다.
미국은 러시아와도 국방 외교부 장관, 합참의장과 참모총장,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앙정보국장 등 다양한 채널에서 직통전화를 유지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에는 미군 유럽사령부와 러시아 국가방위관리센터 사이에 전화 채널을 추가했다. 양쪽 누군가가 상황을 오판해서 핵보유국인 두 나라가 직접 충돌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상황이 긴박해지면 핫라인부터 먼저 만드는 게 안보 상식이다. 두 기관은 하루 두 차례 시험통화를 한다.
11월 중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군사 대화 채널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 대만 방문에 중국이 반발하면서 중단됐던 채널을 되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 나는 누구라도 전화기를 들고 직접 전화를 하면 즉시 응답하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강대국 지도자들은 왜 상대방과 직접 통화하는 채널을 중시할까?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국제외교학과 존 스토신저 교수가 『전쟁의 탄생』(Why nations go to war?)이라는 현대 군사학 명저를 남겼다. 지은이는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중동전쟁, 베트남 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등 현대 전쟁 10건을 분석했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우연과 우발적 사건이 겹치면서 국가들은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으로 끌려 들어가더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상대방과 직접 통화하면 오해와 오판, 지도자의 인간성 요소 때문에 전쟁으로 끌려갈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음을 강대국 지도자들은 직감으로 안다.
윤석열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를 먼저 효력 정지했다. 북한은 남북군사합의 무효화로 맞서고 있다. 남북 사이에 우발적 충돌을 막을 핵심 안전판을 남북한이 없앴다. 남북한 사이에는 대화 채널도 없다. 긴장감을 높일 엄청난 행동을 하면서 남북한은 통지문도 주고받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아차리라는 식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11월13일 한국을 방문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 동의하느냐를 질문받았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긴밀히 협의하기로 합의했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오스틴 장관 자신이 중국, 러시아 국방장관과 늘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다. 상대방 위협을 억제할 힘을 갖추되 힘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대화 장치도 함께 가동하기. 그것이 안보전략 상식이다. 상식 밖 일은 벌어지고 동맹국인 한국을 무시할 수도 없고. 오스틴 장관이 답변하기 곤란했겠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췄다. 한국도 자체 전력이 강력하며 미국과 확장억제 능력을 공유하고 있다. 핵무장을 한 상대방을 두고, 충돌 방지 장치와 핫라인을 버리면 되나? 미국과 중국 러시아 선례를 한국 안보 당국자들이 배워야 한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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