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미디어 비평)범죄와의 전쟁, 불량식품 전쟁, 가짜뉴스 전쟁
2023-11-13 06:00:00 2023-11-13 06:00:00
2012년 개봉해 4백만 관객을 동원하고 명절 특선영화로 TV에서 자주 방영되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을 패러디한 것이다. 전두환의 절친으로 12.12 군사반란 공동정범이기도 한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0월13일 특별 담화문에서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 나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장면은 모든 방송에서 생중계됐고 ‘10.13 특별선언’으로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다.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소탕의 타깃이 된 것은 조폭만이 아니었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특히 길에서 돌을 던지며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들도 대상이 됐다. 검찰, 경찰이 대대적으로 단속과 검거에 나섰고 정부는 한 달 뒤 공무원, 직장인, 초중고 학생들을 동원해 ‘새질서 새생활 운동’이라는 관제 캠페인을 전국에서 시작했다.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고 감옥에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불량식품 등 4대 악을 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대통령 취임 후 ‘불량식품과의 전쟁’ 의지를 강력히 밝혀 정부는 부처와 관계기관이 이른바 ‘범정부 불량식품 근절 추진단’을 발족시켰다. 이 추진단의 불량식품 단속 대상은 가짜 참기름, 색소를 사용해 판매하는 식품, 세균수 초과 냉면, 어린이를 현혹하는 ‘정서 저해식품’ 등이었다. 소비자단체와 언론을 동원해 ‘불량식품 안 사 먹기 운동’을 벌이고, 단속반원이 초등학교 문구점을 기습해 아이들이 사 먹는 떡볶이 판매를 금지하는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이른바 보수정당은 집권하면 이렇게 ‘전쟁’을 자주 벌인다. 외국과 군사력이 충돌하는 전쟁이 아니라 국내전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후 이름하여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짜뉴스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면서 국무회의에서도, 행사장에서도,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행사 중에도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앞장서고 있고 민간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가짜뉴스 판별과 심의에 동원됐다. 언론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도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정권’이란 별명에 걸맞게 막강한 검찰이 칼을 쥐고 휘두르면서 압수수색·고소·고발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과거 보수정권이 벌인 다른 전쟁들보다 훨씬 더 어렵고 무모한 싸움이 될 것 같다. 싸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가? 뉴스 내용의 몇 %가 가짜여야 가짜뉴스인가? 가짜뉴스의 주요 생산자인 기자들도, 전문성을 가진 언론학자들도, 법률가들도 아직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짜뉴스란 용어는 법률적, 학술적 용어도 아니다. 이렇게 모호한 대상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으니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위험천만한 싸움이기도 하다.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지구상 모든 민주주의 문명국가에서 보장된 헌법적 권리다. 5년짜리 정권이 헌법을 흔들 수는 없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무슨 조폭이나 담배꽁초 투기범, 불량떡볶이 제조자를 잡아들이듯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잘못하면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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