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의 회장님 돋보기) 백전노장의 귀환…박찬구 명예회장은 '알부남'
경영 일선 물러난지 6개월 만에 전격복귀
'형제의 난·조카의 난'으로 우여곡절…임직원들에게 오너 아닌 '아버지'로 불려
숫자와 소통으로 경영 판단하는 꼼꼼함 지닌 '바둑 매니아'
2023-11-13 06:00:00 2023-11-13 06:00:0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은 70대에도 경영일선에서 건재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지 6개월 만에 전격 복귀한다고 밝혀 재계 이목이 쏠렸는데요.
 
고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회장의 4남인 박 명예회장은 1976년 금호석유화학(옛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해 47년 동안 석유화학 업계에 몸 담았습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2018년 배임 혐의로 2025년 말까지 취업이 제한된 상태였으나, 지난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취업 제한이 풀렸는데요. 무엇보다 경영 수완이 좋아 회사를 재계 50위권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재계에선 박 명예회장이 금호석유화학을 글로벌 석유화학·소재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소탈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알려졌는데, 언론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한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에 대해 "대기업 오너인데도 행사장 헤드 테이블이 아닌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더라"고 회상했습니다.
 
말수가 적어서 종종 오해를 받고 있지만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알부남)로 재계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재무제표에 나오는 숫자와 조직 내 의견 조율을 통해 경영 판단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는데요.
 
재계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은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조용한 성격"이라며 "성격이 꼼꼼하고 통계학과 출신답게 사업과 관련한 숫자는 끝자리까지도 기억하는 수치에 밝은 경영인"이라고 전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말수가 적지만 본인이 약속 한 건 꼭 지키는 스타일"이라며 "선친인 창업회장과 외모나 성격이 가장 닮은 자제"라고 귀띔했습니다. 언론과의 질의응답도 간단하게 한 두마디 정도하는데요.
 
이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은 친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확연히 다른 성격을 지녔다"며 "부친이 두 사람의 성향에 따라 업황 기복이 큰 항공(삼구)과 경기를 잘 타지 않은 석화(찬구)를 각각 맡긴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큰 형들이 대외적으로 활동한 탓에 동생인 박 명예회장이 상대적으로 뒷편에 물러나 내부를 챙기고 다독인 것"이라고 술회했습니다.
 
28살의 나이에 금호석화 과장으로 입사했던 박 명예회장은 임직원들 사이에서 '가족'이자 '동지'로 불립니다. 현장 방문을 할 때면 직원들과 인근 식당에서 종종 '막걸리 회동'을 하는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길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나 삼촌 처럼 생각하는 임직원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쌓아올린 노사 간의 신뢰 덕분이었을까요. 2011년 횡령 등의 혐의로 박 명예회장에게 영장이 청구됐을 당시, 이례적으로 회사 노조가 구명 요청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박 명예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마자, 공장으로 내려와 노조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고마움을 표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박 명예회장은 바둑 매니아로도 알려졌는데요. "바둑에서 경영을 배운다"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도 경영', '가치 경영'을 추구하겠다는 경영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마'와 관련한 경영철학을 피력하고 있는데요. 흔히들 경영에서 바둑용어와 관련해 '대마불사 (大馬不死)'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대마가 잡히면 패배나 다름없기 때문에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이를 "대마를 지키지 못할 땐 포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해석으로 경영에 접목한다고 합니다. 대마를 지키려고 매달리면 다른 여러가지가 죽어난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지요.
 
최근 석유화학업계는 시황이 침체한 와중에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까지 겹쳐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5.3% 감소한 842억원에 그쳤습니다. 수요 침체 여파로 합성고무, 합성수지, 페놀유도체 등 대부분 사업 부문이 수익성 하락을 겪은 건데요. 
 
업황 부진 속 박 명예회장의 경영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이십대의 파릇한 나이에 석유화학 업종에서 기름밥을 먹던 박 명예회장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일흔의 황혼이 됐습니다. 백전노장 박 명예회장의 귀환으로 석유화학 사업이 제2의 도약을 이뤄낼지 주목됩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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