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반란의 도시, 베를린』, “도시에 대한 권리”를 생각하기
2023-09-14 06:00:00 2023-09-14 06:00:00
지난 8월 말 출간된 『반란의 도시, 베를린』(이계수 저, 스리체어스)은 “각별”할 정도로 다양성을 품은 한 도시를 둘러본 여행기처럼 시작한다. 저자는 다양성이라는 인상 너머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도시로 흘러들어와 거주하고 참여하며 저항한 사람들이 이룬 “다문화와 사회적 연대”를 그 다양성의 정체로 추적한다. 베를린은 그 덕분에 (저자가 즐겨 인용하는 앙리 르페브르의 표현을 빌리면) “작품으로서의 도시”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지만, 맹목적 증식만을 목표로 한 자본의 운동을 피하지는 못했다.
 
저자가 베를린에 머물렀던 2017과 2018년은 이미 공공 임대 주택이 민간에 대거 매각되고, 임대료를 합법적으로 상승시킬 법적 통로가 마련되었다. 민간의 투자자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의 주민들과 전세계에서 소비하러 몰려온 관광객들이 도시를 차지한 시점이었다. 2021년 주택임대회사 도이체보넨이 소유한 주택을 사회화하자는 국민표결 운동은 바로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실 이 운동은 권력과 결탁한 자본이 도시를 상품화해온 과정에 대한 도시민들의 저항이라는 연속적 흐름 속에 있었다. 저자는 “베를린의 도시민 투쟁을 설명하는 도구로 ‘도시에 대한 권리’ 담론을 선택”하여, 이를 1980년 전후 베를린-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점거 투쟁’과 2021년의 베를린 주택사회화 운동, 그리고 각 사건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의 과정들을 짚어가고 있다.
 
관심을 끈 것은 저자가 “헌법적 상상력”이라 표현한 것이었다. “건전한 중산층 마을”로의 재개발 사업에 맞섰던 크로이츠베르크 주민들의 빈집 점거 운동은 현행법에 대한 주류적 시각에 따라 소유권 질서를 교란하는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소유할 권리가 투기를 위해 모든 도시민들이 공유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일부분을 빈집으로 남겨둬도 될 권리와 같지 않다며, ‘사용할 권리’ 혹은 ‘점유할 권리’를 우선해 점거를 주거침입으로 보지 않는, “낡은 도그마틱에 도전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방향성은 주택사회화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이 운동이 ‘토지, 천연자원 및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규정한 독일기본법 제15조에 대한 최초의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아들인다. 비록 베를린 시정부가 과반이 찬성한 사회화에 소극적인 와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운동이 규범적으로만 존재하던 여러 권리들이나 제도를 실질적인 논쟁의 한가운데로 끌고 와서는, 소유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외면했던 해결책들을 위한 (도시에 대한 권리를 포함해) 새로운 법적 원리들로서 자리할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법학자인 저자는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용산참사, 청년주거문제, 전세사기라는 여러 문제들을 두고도 “소유권 독재를 제어할 법리를 상상하는 일에 소극적”인 한국의 법학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 책을 마치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평론이 시론(時論)의 주제로 적합한지 잘 모르겠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이 책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새로운 권리를 위한 운동, 다시 말해 합리적이며 때로 도덕적이라고까지 인식되는 보수적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종류의 싸움의 무대가 될 수 있기는 할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이 일종의 무법적 전횡 혹은 국가나 제도의 무능력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싸움을 위해 다시 이 책을 들춰볼 날이 오기를 바란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